http://www.aspire7.org/reference-1-14.html

http://arirang.snu.ac.kr/~saturn/unabomber/una_k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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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서문

2. 현대좌파주의의 심리

3. 열등감

4. 지나친 사회화

5. 권력과정

6.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들

7. 자율성

8. 사회문제의 근원

9. 현대사회에서 권력과정의 붕괴

10. 과학자의 동기

11. 자유의 본질

12. 산업-테크놀로지 사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13. 산업사회에서 자유의 제한은 피할 수 없다.

14. 테크놀로지의 악한 부분과 선한 부분은 분리될 수 없다.

15. 테크놀로지는 자유에의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16. 더 간단한 사회문제조차 우리는 제어할 수 없다.

17.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

18. 인간행동의 통제

19. 갈림길에 선 인류

20. 인간의 고통

21. 탈출

 

 

1. 서문

1. 인류에게 산업혁명의 결과는 재앙이었다. 산업혁명 덕분에 평균수명이 늘어났지만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고, 심리적 고통은 확산되었으며, 자연은 파괴되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등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2. 테크놀로지 사회체제는 살아남을 수도 붕괴될 수도 있다. 만약 살아남는다면 길고 고통스러운 적응기를 거친 후의 일일 것이며, 인간은 사회라는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될 것이다.

3. 체제가 붕괴될 경우에도 그 결과는 고통스러울 것이며, 체제가 거대해질수록 붕괴의 결과도 참혹해진다. 체제가 어차피 붕괴될 것이라면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4. 이런 이유로 나는 산업체제에 항거하는 혁명을 주장한다. 이 혁명엔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혁명은 갑자가 일어날 수도 있고 수십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혁명의 목표는 정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사회의 경제적, 테크놀로지적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다.

5. 이 글에서 우리는 산업기술사회에서 발생되어나온 부정적인 발전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둘 것이다. 다른 발전들은 간단히 언급만 하거나 아니면 몽땅 무시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런 발전들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인 이유때문에 우리는 논의의 범위를 공공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못한 부분이나 아니면 새로이 논의되어지는 부분으로 한정시켜야한다. 예를 들면, 잘 발달된 환경과 황무지 개척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환경의 저하나 자연의 파괴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2. 현대좌파주의의 심리

6.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광기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드러난 광기가 바로 좌파주의(leftism)다. 좌파주의의 심리를 검토하는 것은 현대사회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한다.

7. 좌파는 사회주의자, 집단주의자, 정치적으로 옳은 부류, 페미니스트, 게이 운동가, 장애인 운동가, 동물보호 운동가 등을 말한다. 내가 얘기하는 좌파주의는 특정한 운동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수많은 운동이나 이데올로기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9. 현대 좌파주의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두가지 심리적 경향을 나는 '열등감'과 '지나친 사회화'라고 생각한다. 열등감이 현대 좌파주의 전체에 발견되는 특성인데 비해 지나친 사회화는 현대 좌파주의의 분파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카진스키는 좌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에 비판적인 카진스키가 좌파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는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각 분류별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파는 경제적으로는 성장위주이고 사회적으로는 개인위주이며 과학기술면으로는 발전위주이고 윤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계급적으로는 상류층 위주입니다. 한편 좌파는 경제적으로는 분배위주이고 사회적으로는 집단위주이며 과학기술면으로는 안정위주(환경보호)이고 윤리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며 계급적으로는 하류층 위주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분류가 획일적이지 않은데 경제적으로는 좌파이지만 윤리적으로는 우파일 수 있습니다.

카진스키의 경우 과학기술적인 면에서는 좌파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우파입니다. 카진스키는 개인주의적(이기적,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집단(공공)의 이익을 중시하고 약자를 보살피며 개인적 희생도 감수하는 좌파를 극도로 싫어하는 것입니다. 좌파나 우파는 개인의 선천적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과 본인이 속한 환경에 따라 결정되게 됩니다. 이 중 무엇이 옳은지는 가리기 어려우며 역사적으로 끊임 없는 분쟁과 대립을 지속해 왔습니다. 확실한 것은 뭐든지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으며 좌우 균형을 맞춘 중용의 도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중도적 성향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3. 열등감

10. 여기서 말하는 열등감은 자기비하, 무력감, 비관적 성향, 죄의식, 자기혐오 등 열등감과 관계 있는 속성을 포괄적으로 뜻하는 것이다. 현대의 좌파들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감정들이 현대 좌파주의의 방향을 결정한다.

11.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할 때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할 경우 그 사람은 열등감이나 자기비하에 빠져 있다. 이같은 성향은 소수집단 권리운동가들에게서 발견되는데 이들은 소수집단을 가르키는 단어들에 민감히 반등한다. 아프리카인을 검둥이(negro), 아시아인을 동양인(oriental), 장애인을 불구(handicapped), 여자를 계집(chick)으로 부르는 것에는 원래 아무런 모욕적인 의미가 없다. 이들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를 불어넣은 것은 운동가들 자신이다. 동물보호가들은 애완동물(pet)이란 단어를 거부하고 '동물 동반자'(animal companion)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좌파 인류학자들은 '원시인'이란 단어를 '비문자인'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13. 많은 좌파는 약함(여성), 패배(아메리칸 인디언), 역겨움(동성연애) 등 부정적인 단어를 자신의 집단의 문제와 동일시한다. 좌파들은 이들 집단을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14.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힘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15. 좌파들은 강한 것, 좋은 것, 성공한 것의 이미지를 증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미국과 서구문명과 백인남성과 합리성을 증오한다. 좌파들은 서구문명이 호전적이고 제국주의적이며 성차별적이고 자민족 중심적이기 때문에 증오한다고 하지만 실제 이유는 서구문명이 강하고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16. '자신감', '자존심', '선도적', '진취적', '낙관주의' 등의 단어들은 진보주의자와 좌파의 사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좌파는 반개인주의적 친집단주의자다. 좌파는 사회가 모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모든 사람의 욕구를 채워 주며, 모든 사람을 보살펴 주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으며,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다는 내면적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좌파가 경쟁이란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그가 마음 속 깊히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좌파를 포괄적으로 정의한다면 사회적 약자의 권리주장입니다. 사회적 약자란 노인, 아동(고아), 장애인, 실업자, 노동자, 빈곤층, 채무자, 여성, 외국인, 동물, 환경 등입니다. 이들은 사회의 비주류이자 소수로 권리주장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거나 보살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외되기 쉬운 부류의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좌파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권층이라 자부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불의의 사고나 질병이나 실패로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지 않으면 점점 사회갈등이 심해지고 범죄, 시위, 폭동 등으로 결국 사회는 붕괴되게 됩니다.

카진스키는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사회생활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좌파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벌이나 개미와 같은 사회적 동물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좁은 땅에서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체제 정치제도 경제체제 교육제도 의료체제 예절문화 등이 필요합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되면 사회를 극도로 미워하고 결국 다른 사람을 이유 없이 해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카진스키가 말한대로 좌파의 심리에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고, 이 열등감으로 인해 매사에 부정적이며 공격적인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열등감은 좌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서울대생 중 상당수가 열등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열등감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며 자신 없어 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의 요소는 경제력, 학력, 능력, 건강, 외모 등이 있습니다. 열등감의 반대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우월감입니다.

열등감에 시달리면 자신을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고 불안감에 시달리며 자해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며, 자신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일이나 취미생활이나 운동이나 교제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열등감을 부정적으로 감추거나 해소하는 방법은 사치와 자랑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거나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해치는 것입니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주고 자신감을 회복시켜줘야 합니다.

 

 

4. 지나친 사회화

24. 사회화란 어린이들로 하여금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윤리에 따르고 복종하면서 사회에 기능적으로 잘 적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사회화되었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좌파를 반항아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좌파는 지나치게 사회화되었다.

25. 우리 사회의 윤리체계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완벽하게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예를들어 아무도 증오해서는 안되지만 사실 누군가를 증오한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사회화한 나머지 자신에게 지운 윤리라는 짐더미에 허덕이면서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발버둥친다.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진짜 동기에 대해 숨겨야 하며, 실제로는 비윤리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감정과 행동을 윤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이란 말은 그런 사람들을 가르키는 것이다.

26. 지나친 사회화는 자기비하, 무력감, 패배주의, 죄의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어린이를 사회화할 때 가장 중요한 수단은 어린이가 사회의 기대에 맞지 않는 언어나 행동을 보일 때 창피를 주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사람은 가볍게 사회화된 사람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있어 훨씬 큰 제약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 도둑질, 교통법규 위반, 직장에서 태만, 타인에 대한 증오, 교묘한 속임수 등을 행하지만 지나치게 사회화된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지나치게 사회화한 사람은 윤리에 어긋나는 것을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에 빠진다. 사회는 인간에게 윤리와도 상관 없는 여러 규칙과 규범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사람은 사회윤리에 따라 평생을 보낸다. 그들은 그 결과 구속감과 무력감이란 심각한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27. 현대 좌파 중에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분파가 지나치게 사회화되었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는 주로 지식인이거나 중상계층이다.

29.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가 사회에 저항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사회에 집착하는 예를 들어보자. 많은 좌파들이 흑인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의 직업을 주고, 흑인 학교의 교육의 질을 높히며, 흑인 학교의 지원금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좌파들은 흑인들의 최하층 삶을 사회적 수치로 간주하고, 흑인 남성들을 중상층 백인 남성과 같이 기업체 중역, 변호사, 과학자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산업-테크놀로지 체제의 가치관이다. 좌파들은 흑인을 백인 남성의 복사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흑인 고유의 문화를 보존한다고 한다. 그러나 체제는 사람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학교를 다니고, 존경할만한 직업을 가지며,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오르고, 책임감 있는 부모이며, 비폭력주의자이면 된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는 흑인남성을 사회체제에 통합시키고, 흑인남성들이 사회체제의 가치를 수용하기를 바란다.

 

지나친 사회화는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를 비롯한 거의 모든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간은 사회에 의존해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개성과 생활을 지나치게 희생하면서까지 사회가 제시한 모델에 자신을 맞추려고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기울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한 이상적 모델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전문직업을 얻어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최신 전자제품을 갖추며, 자녀를 해외에 조기유학보내는 것입니다. 옛 공산주의에서도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무시하고 정부에서 정한 획일적인 삶과 사상을 강요해 문제가 되었습니다.

카진스키가 언급한 것 중 윤리적인 문제는 사회성이나 좌우파와과는 큰 관계가 없고, 그 사람의 신념과 양심에 따릅니다. 사회에 잘 적응해 사회에서 성공한 지도층 인사들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을 보면 사회성과 윤리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성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윤리와 상관 없이 따라야 하는 사회규범과 규칙과 관습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결혼을 하려고 하면 꼭 필요하지도 않는 형식과 절차가 너무 많아 이를 따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소모하면서 행복을 느끼기도 전에 지치게 됩니다.

인간이 사회화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 중시하면 방종과 무질서와 범죄 횡행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회화되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했을 때 엄청난 좌절과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들어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고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고 세상유행에 따라 살지 못할 때 낙담하게 됩니다. 또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도 개인과 가정의 삶과 건강을 희생해가며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즉 인간은 사회에 의존하고 적응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의 삶과 개성을 희생해가며 사회가 추구하는 표준모델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5. 권력과정

33. 인간은 권력좌정이라고 하는 생물학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욕구는 권력욕과 관련이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권력과정은 네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이 중 세가지는 목표, 노력, 목표달성이다. 네번째 요소는 필수적이지는 않은데 자율성이며, 나중에 거론할 것이다.

34.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를 안게 된다. 처음엔 모든 것이 신나겠지만 그것도 잠깐, 급속히 권태에 빠지고 타락해 가며 마침내 우울증에 걸리게 될 것이다. 권력을 위해 투쟁하는 귀족은 해당하지 않지만 안정적인 옛 귀족들은 대체로 퇴폐주의자가 되기 쉽다.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는 귀족들은 권력을 쥐고 있어도 대개 권태에 빠지고 쾌락을 탐닉하다가 결국 타락해 버린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사람은 권력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표도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35. 사람은 누구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목표가 없다해도 음식과 옷과 주거지 등 생활을 위한 필수품을 얻기 위한 목표가 남아 있다. 그런데 유한(有閑) 귀족은 이런 것들을 아무런 노력 없이 획득한다. 거기에서 권태와 타락이 생겨난다.

36. 목표가 생활 필수품이라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의 결과는 죽음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좌절이다. 평생 목표 달성에 실패할 때 그 결과는 패배주의, 자기비하, 우울증이다.

37. 따라서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인간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며,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카진스키가 말하는 권력과정은 인간의 성취욕을 의미합니다. 성취욕은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혼적인 욕망입니다. 자신이 관심을 두는 분야에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며 목표에 달성했을 때 큰 만족과 희열을 느낍니다. 과학, 기술, 학문, 예술, 취미, 기록, 스포츠 등 문명의 발달이 바로 이 성취욕에 기인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망과 혼의 욕망의 성취는 메카니즘이 비슷합니다.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할 때 도파민, 엔돌핀, 아드레날린 등이 분비되어 삶의 의욕과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줍니다.

혼적인 욕망을 추구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지므로 자연히 육적인 욕망을 과도하게 추구해 쾌락을 얻기 위해 타락합니다. 또한 육적인 욕망이 잘 충족되면 혼적인 욕망을 추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 주어진 공부만 하는 학생이나 시키는대로 일만 하는 노동자는 성취욕을 느끼기 힘들므로 술과 담배와 게임과 취미생활 등으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분비하며 대리만족을 얻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실업자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다면 도파민과 세르토닌 부족으로 인한 무력증과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일수록 오히려 도박, 마약, 음란, 알코올 중독, 인터넷 중독, 가정폭력, 정신질환이 높은 것은 적절한 성취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한 상태가 인간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등 따스고 배부르면 딴생각 난다는 옛말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대기업과 대교회의 끊임 없는 확장도 성취욕에 기인한 같은 맥락입니다. 육적인 욕망과 혼적인 욕망은 필요하지만 과도하면 문제(집착, 타락, 범죄)가 생기기 때문에 영적인 조율과 통제가 필요합니다.

 

 

6.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들

38. 하지만 모든 귀족이 권태와 타락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일본왕 히로히토는 퇴폐적인 쾌락에 빠지는 대신 해양생물학 연구해 전념해 이 분야에 이름을 남겼다. 신체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전념할 필요가 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인위적인 목표를 세운다. 대개의 경우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했던 것과 같은 에너지를 쏟아가며 목표달성을 추구한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문학에 열정을 쏟았고, 유럽귀족들은 사냥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신분경쟁을 계속하거나 과학에 힘을 기울인 귀족도 있었다.

39.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이란 것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충족감을 얻기 위해 인위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40. 현대의 산업사회는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최소한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간단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훈련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충분하며, 제시간에 출근하고 적당히 일하면 된다. 필요조건은 적당한 지능과 단순한 복종심이다. 사회는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준다. 그러므로 현대사회는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들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는 과학적 연구작업, 스포츠 기록경쟁, 인도주의 활동, 예술 및 문학 창작, 회사 내에서의 직위 상승, 돈과 재화의 획득, 사회운동 등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얻어지는 충족감이 돈이나 특권보다 더 중요하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41.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은 진짜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충족감이 떨어진다.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에 몰두한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며 멈추지 않는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돈에 눈이 먼 사람은 끝없이 더 많은 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과학자는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문제로 달려간다. 달리기 선수는 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자신을 몰아친다.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자율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거대한 사회의 기계적 부품으로 기능함으로써 충족시킨다. 반면 사람들은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을 추구하는 데에는 큰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7. 자율성

42. 권력과정의 한 부분으로서의 자율성은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목표를 향해 일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자율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노력은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있는데서 이루어져야 하며 스스로 정한 방향과 통제를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개인으로서 주도권과 방향결정권과 통제권을 반드시 행사할 필요는 없다. 대개는 작은 집단의 구성원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집단의 구성원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성공적으로 결합한다면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체의 자율적인 결정권과 주도권이 허용되지 않고 엄격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일한다면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집단적인 결정방식을 채택할 경우에도 그 집단이 너무 커서 개인의 역할이 무의미한 경우에도 권력과정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43.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적은 사람은 권력욕망이 원래 작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권력욕망을 충족시킬 것이다.

44. 권력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권태, 타락, 자기비하, 열등감, 패배주의, 절망, 불안, 죄책감, 좌절, 적대감, 배우자나 자녀 학대, 쾌락주의, 변태적 성, 불면증, 과식 또는 거식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8. 사회문제의 근원

46. 현대사회가 사회적 심리적 문제를 유발하는 이유는 현대사회가 인류가 여지껏 처해 왔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환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47. 현대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인 환경으로는 과도한 인구밀도,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회변동, 대가족이나 마을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48. 인구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인구과밀과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의 결과이다. 산업화 이전엔 농경사회였지만 산업혁명 이후엔 도시의 규모와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현대적 영농 테크놀로지 덕분에 도시의 과도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다.

49. 원시사회에선 자연이 안정적인 준거틀을 제공해 주었고, 이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엔 사회가 자연을 지배하고 있으며,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따라 현대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준거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50. 보수주의자들은 바보다. 그들은 옛 전통 가치관에 묶여 있으면서도 경제성장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테크놀로지와 경제의 발전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며 그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가치들을 붕괴시킨다는 자명한 사실을 보수주의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51. 전통적 가치의 붕괴는 전통적인 소규모 사회집단을 묶어주고 있는 유대관계가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환경이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가도록 요구하거나 유혹한다는 점도 소규모 사회집단의 와해를 촉진한다. 테크놀로지 사회가 효율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족간의 유대와 지역 공동체를 약화시켜야만 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체제(정부, 기업, 학교 등)에 최우선으로 충성해야 하며,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충성은 부차적이어야만 한다.

 

옛날에는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구해와 직접 만들고, 음식물은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과 가족 친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생필품은 거대한 공장과 기계화된 농장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이 삶에 필요한 물자를 구하기 위해선 사회에서 일정한 직업을 얻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선 옛날에 필요 없었던 유행에 걸맞는 각종 의류와 최신 전자제품과 통신장비와 자동차 등을 구비해야 하는데 이를 얻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급여수준이 높고 안정된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이를 얻기 위해 학생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운이 좋게 좋은 일자리를 얻어도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과도한 업무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나마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릅니다. 전문지식이나 전문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한 일자리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과 불안정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며, 성취감을 느낄 수 없는 단순한 업무로 인해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즉 현대사회에선 자신의 인생을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개척할 수 없고 전적으로 사회에 의지해야 하지만 이에 반해 사회는 냉정하고 냉혹하기까지 합니다. 급기야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사회의 낙오자로 찍힐 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도 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또한 나와 내 가족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수 없고, 기업의 고위임원이나 국가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현대인들은 생활은 옛날보다 편리해졌지만 개인의 주체성과 삶의 안정성 면에서는 불리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9. 현대사회에서 권력과정의 붕괴

59. 인간의 욕망은 세부류로 나뉜다. ①최소한의 노력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  ②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  ③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 권력과정은 두번째 부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다.

61. 원시사회에서 생활필수품을 얻는 것은 두번째 욕망에 속했다. 필수품을 얻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최소한의 노력으로 누구나 생활필수품을 얻을 수 있고, 신체적 욕구는 첫번째 욕망으로 전환되었다.

62. 현대사회에서 섹스, 사랑, 신분 등과 같은 사회적 욕구는 두번째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노력은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

63. 그래서 두번째 부류에 속하는 인위적인 욕구들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런 인위적인 욕구를 채움으로써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대신 채운다. 발달된 광고와 마케팅 기법은 할아버지 세대는 결코 욕망하지 않고 꿈도 꾸지 않았을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인위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많은 돈이 들고, 이 돈을 벌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므로 인위적 욕구는 두번째 부류에 속한다. 즉 현대인은 광고와 마케팅 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욕구를 추구하면서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을 통하여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64.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권력과정에 대한 인위적인 욕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20세기 전반부의 사회 비평서에서 반복된 주제는 현대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을 괴롭히는 목적 상실감이다. 실존주의는 현대의 삶이 목적 없음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은 권력추구의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는 생활필수품, 섹스, 사랑, 신분 등과 같은 외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활동을 통해서만 완벽히 충족될 수 있다.

65. 돈을 벌거나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는 등 목표를 추구할 때 대개의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위치에 있지 않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피고용자 신분이며,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정부의 규제가 자신들의 손발을 묶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영업은 프렌차이즈 제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많은 프렌차이즈 제공 회사들이 프렌차이즈 희망자들에게 특별한 인성검사를 실시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검사의 목적은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기 위한 것으로 그런 사람은 프렌차이즈 제도를 군소리 없이 따라할 만큼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6.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행하는 것보다 체제가 그들에게 행한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기회도 체제에 의해 제공되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규칙과 규제에 순응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미리 정해 놓은 기법을 따라야만 한다.

67. 사회의 권력과정은 진정한 목표의 부재와 목표추구의 자율성 부재로 인해 붕괴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그 결정에 관여할 수 없으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직업을 얻고 잃는 것도 정부 경제부처나 기업체 중역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같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는 개인의 노력은 좌절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68. 우리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원시인은 맹수와 배고픔의 위협에 둘러싸여 있지만 자기방어를 위해 싸울 수 있고, 음식을 찾아 먼 길을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핵사고, 식품 속의 발암물질, 환경오염, 전쟁, 늘어나는 세금, 거대조직에 의한 사생활 침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전국적인 사회현상 또는 경제현상 등이 그런 위협이다.

70. 원시인은 자기 힘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반면 현대인의 안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너무 거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타인의 손에 맡겨져 있다. 현대인의 안전에 대한 욕망은 첫번째와 세번째 부류의 욕망으로 전락해 버린다.

71. 현대인들이 지닌 욕망 중 상당 부분은 좌절되고 세번째 부류의 욕망으로 전락한다. 여기서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싸움을 하거나 심한 말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대인은 사회와 고용주가 정한 규칙과 규제에 묶여 있으며, 규칙과 규제들은 현대인의 욕망을 좌절시키고 권력과정을 교란한다. 그러나 규제들 대부분은 산업사회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이므로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73. 정부와 대형 조직은 대중의 태도나 행동을 조작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프로퍼갠더를 사용한다. 프로퍼갠더는 상업광고와 홍보에 국한하지 않으며 오락 프로그램의 내용도 강력한 프로퍼갠더의 형식이다.

75. 원시사회에서 삶은 일련의 단계들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어느 한 단계의 욕구와 목적이 충족되면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젊은 남성은 사냥꾼이 됨으로써 권력과정을 통과했으며, 이때 사냥은 스포츠나 충족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 단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면 청년은 곧바로 가정을 이루는 책임을 맡았다. 반면 현대인들은 수많은 대리 충족감을 채우나라 바쁜 나머지 자녀 갖기를 끝없이 미루고 있다. 자녀를 제대로 기르고 자녀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면서 권력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원시인은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느끼며 노년기와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반면 현대인은 육체적 컨디션과 외모,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다 보니 육체적 쇠락과 죽음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대인은 실용적인 목적으로나 권력과정을 통과하는데 자신의 육체적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욕구는 채워지지 못하며 그것이 노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낳는다. 인생을 통하여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사람만이 인생의 종말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10. 과학자의 동기

87.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의 가장 중요한 사례들이다. 어떤 과학자는 자신이 과학연구에 몰두하는 동기가 호기심이나 인류의 복지를 향한 열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과학자들의 주된 동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정상적인 호기심이 아닌 고도의 전문화된 문제를 놓고 씨름한다. 과학자가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88. 인류의 복지 또한 과학자의 진정한 동기가 될 수 없다. 고고학이나 비교언어학과 같이 과학적 연구는 인류의 행복과 관련이 없다. 핵발전소 건설에 온 마음을 바쳤던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박사의 경우 자신의 연구동기가 인류의 복지를 위한 것이었다면 왜 수소폭탄의 개발을 도왔을까? 핵발전소도 값싼 전기의 혜택 못지 않게 핵사고와 핵폐기물의 문제를 안고 있다. 텔러 박사가 핵발전소에 전력을 기울인 이유는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결과가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얻어지는 개인적인 충족감 때문이었다.

89. 과학자들의 진짜 연구동기는 권력과정을 통과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목표를 갖는 것(풀어야 할 과학적 문제), 노력하는 것(연구), 목표를 달성하는 것(문제의 해결)이다. 과학연구가 대리만족인 이유는 과학자들이 연구 그 자체로부터 충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90. 과학자들에게는 돈과 신분 같은 다른 연구동기도 작용한다. 어떤 과학자는 신분상승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이런 욕망은 그의 연구에 상당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91.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거대한 권력운동을 구성하며, 많은 과학자들은 이 거대한 운동에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권력욕구를 충족시킨다.

92. 과학은 과학자들과 연구기금을 제공하는 정부관료 및 기업체 중역들이 지닌 심리적 욕구에 따른 맹목적인 행진일 뿐이다. 그들은 인류의 진정한 행복이나 다른 기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11. 자유의 본질

94. '자유'란 권력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기회를 뜻한다. 여기에는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이란 인위적인 목표가 아니라 진정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어떤 개인이나 조직으로부터도 일체의 간섭이나 조작 또는 감독이 없어야 한다. 자유란 본인의 존재가 걸린 생과 사의 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음식, 옷, 주거지와 환경 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협에 대한 방어능력이다. 여기서 권력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싼 환경을 통제하기 위한 권력이다.

95. 사람들은 우리가 헌법에 보장된 몇가지의 권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가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법률적인 권리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다. 한 사회의 개인적 자유의 정도는 그 사회의 법률이나 정부형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지닌 경제적 테크놀로지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인디언 국가는 왕국이었고,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독재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러나 이들 사회는 지금 사회보다 더 많은 개인적 자유를 허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회에는 조직된 경찰력도 없었고, 장거리 통신망이나 감시 카메라도 없었다. 지배자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효과적인 메카니즘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은 통제를 피할 수 있었다.

 

 

12. 산업-테크놀로지 사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111. 산업체제가 우리의 자유를 점점 더 제한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업혁명부터 시작해서 테크놀로지는 개인의 자유와 지역의 자율성을 희생해가며 체제를 강화해 왔다. 테크놀로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겠다는 어떠한 변화도 사회의 발전추세와는 대치된다. 사회체제의 급진적이고 위험하며 예측불가능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위한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 개혁가가 아니라 혁명가만이 자유를 위한 사회변화를 이룰 수 있다.

112. 자유를 회복하되 주어진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자유와 테크놀로지가 타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방안은 제시하지 못한다. 가까스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세운다 해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거나 타협하게 될 것이다.

 

 

13. 산업사회에서 자유의 제한은 피할 수 없다.

114. 현대인은 법률과 규제의 그물에 묶여 있다. 본인의 운명은 본인이 결정할 수 없고, 멀리 떨어져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우연이나 관료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 사회에선 불가피한 일이다. 체제가 기능하기 위해선 반드시 인간의 행동을 치밀하게 규제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이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관료주의는 반드시 엄격한 규칙에 의해 운용되야 한다. 하위 관료에게 개인적인 재량권을 허용할 경우 체제가 와해되고 불공평하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거대조직에 의해 우리의 삶이 규제되는 것은 산업-테크놀로지 사회가 기능을 위해선 필수적인 일이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사회체제는 개인에 대한 외적 규제뿐만 아니라 프로퍼갠더나 교육 등을 통해 심리적인 통제까지 실시하게 된다.

115. 체제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패턴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제한다. 체제는 과학자와 수학자와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며, 그들 없이는 체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이러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도록 극심하게 다그친다.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을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정상적인 청소년이라면 당연히 현실세계와 활발한 접촉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원시인들은 어린이를 훈련시킬 때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합당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경우 소년들은 활발한 야외 활동을 통해 훈련을 받는다. 야외활동은 바로 소년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116. 체제가 인간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가해지는 끝없는 압박으로 인해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는데 실패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117. 선진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개인의 운명은 그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결정들에 의해 좌우된다. 테크놀로지 사회는 작고 자율적인 공동체로 분리될 수 없다. 테크놀로지 사회는 작고 자율적인 공동체로 분리될 수 없다. 생산이 수많은 사람과 기계를 소유한 기업체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고도로 조직적이어야 하며, 의사결정은 대규모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이루여져야 한다. 의사결정은 정부관료나 기업체 중역, 기술 전문가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국민투표를 해도 투표자 수가 너무 많아 각 개인의 투표는 거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118. 보수주의자를 비롯한 몇몇 부류는 지역 자율성을 주장한다. 지역 공동체가 한때 자율성을 갖고 있다가도 공공시설과 컴퓨터 통신망, 고속도로 시스템, 매스 미디어, 현대적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다.

119. 체제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인간의 행동을 체제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테크놀로지 체제는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이 없다. 체제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적 필요성이다. 물론 체제가 여러 가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만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체제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 한해서다. 체제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이유는 모두 굶주려 있으면 체제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체제는 정당하고 확실하며 실질적인 이유를 들어 사람들이 체제에 맞춰 행동하도록 끝없이 압박한다. 정부와 미디어와 교육과 환경주의자들은 재활용에 관한 프로퍼갠더를 대중에게 퍼붓는다. 체제가 더 많은 기술자를 필요로 하면 아이들을 과학공부로 몰아 넣어 지긋지긋한 과목을 공부하느라 좋은 시절을 허비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숙련공이 기술진보에 떠밀려 직업을 잃고 재훈련을 받을 때 사람들은 모멸감을 느끼기 보다 당연히 기술적 필요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인간적 욕구가 기술적 필요를 앞서면 경제문제와 실업, 물자부족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다.

 

 

14. 테크놀로지의 악한 부분과 선한 부분은 분리될 수 없다.

121. 산업사회가 자유를 옹호하며 개혁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하나의 통합된 체제이며, 그 안에 있는 부분들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악한 부분을 따로 떼어 제거할 수 없으며, 선한 부분만 유지할 수도 없다. 현대의학의 발전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컴퓨터, 과학 등 다른 분야의 발전에 달려 있다. 첨단 의료시설에는 값비싼 첨단장비가 필요한데 그런 장비는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회에서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테크놀로지 체제를 배제한 채 의학분야에서만 발전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124. 유전공학이 발전하면 비윤리적인 일들이 벌어질 것이고 윤리규약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수가 지지하는 윤리규약이 만들어져도 소수는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다.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유전공학을 금지하는 것이나 테크놀로지 사회에선 결코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유전공학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는 윤리규약은 만들어진다 해도 오래 지탱될 수 없다. 생물공학의 막강한 권력이 제시하는 유혹은 뿌리칠 수 없을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유전공학의 응용은 좋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유전공학의 광범위한 이용은 피할 수 없으며, 산업-테크놀로지 체제의 욕구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15. 테크놀로지는 자유에의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125. 테크놀로지와 자유 간에 지속적인 공존을 이루기란 불가능하다. 테크놀로지는 자유보다 강력한 사회적 힘이면서 반복되는 타협을 통해 계속해서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넓이의 땅을 가진 두 사람의 이웃이 있다고 가정하자.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땅을 한조각 달라고 하면 약한 사람은 일단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강한 사람이 내가 달라는 것의 반만 달라고 타협하면 약한 사람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 얼마 후 강한 사람이 또 땅을 요구하면 다시 타협이 이루어지고, 사태는 그런 식으로 계속 진행된다. 오랫동안 타협을 강요함으로써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의 땅을 모두 빼앗게 된다. 테크놀로지와 자유 사이에 갈등이 빚어질 때도 사태는 똑같이 진행된다.

127. 자유를 위협할 것 같지 않은 테크놀로지의 진보는 나중에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어디든 자기 마음대로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확대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동차가 등장한 후 얼마 안가 자동차는 인간의 자유를 극심하게 제한하는 방법으로 사회를 바꿔 놓았다.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교통법규와 교통시스템이 차량의 이동을 통제한다. 운전자들은 운전면허 시험과 발급, 차량 등록증 갱신, 보험, 세금, 할부금, 차량보수 등 많은 의무조항에 묶이게 되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직장, 시장, 학교 등이 멀리 떨어져 걸어갈 수 없으므로 자동차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도보로 이동할 때에도 자유는 제한된다. 도시에서 보행자는 자동차를 위해 설계된 교통신호 때문에 가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한다. 시골에서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다니는 것이 위험하고 불쾌하게 되었다.

128.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우리의 자유영역을 계속해서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진보는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된다. 전기, 배관, 통신 등 기술적 진보에 대해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인간에 기술에 의존할수록 개인의 운명은 정치가나 기업체 중역이나 기술자에 의해 결정된다.

129. 테크놀로지가 강력한 사회적 힘인 이유는 테크놀로지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적 발명품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그것에 의존하고 결국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사람들만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 역시 테크놀로지에 의존한다. 체제는 더 심화된 테크놀로지화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 테크놀로지는 자유에게 한걸음 양보하라고 계속 요구한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전체 테크놀로지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한걸음도 뒤로 물러설 수 없다.

130. 테크놀로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보하며, 동시에 많은 분야에서 자유를 위협한다. 예를 들어 인구과밀, 법률과 규제, 거대조직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 심화, 프로퍼갠더, 유전공학, 감시장치 등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것 중 하나라도 물리치기 위해서는 길고 힘든 사회적 투쟁이 필요하다.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공격과 개발되는 속도에 압도당하고, 결국 무력감에 빠져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한다. 그러한 위협들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테크놀로지 체제 전체와 싸울 때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 필요한 것은 혁명이지 개혁이 아니다.

131. 기술자나 과학자는 대개 자신의 일에 감정적으로 몰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술적 작업과 자유 사이에 갈등이 빚어질 때에는 언제나 기술적 작업의 편에 선다. 기업이나 정부도 유용하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며 개인의 정보들을 긁어 모은다.

132. 사람들은 처벌이나 부정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일할 때보다 어떤 보상을 바라며 일할 때 더 잘 끈기 있게 일한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얻는 보상을 기대하며 일한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해 일한다. 이 힘든 임무를 끈기 있게 제대로 해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개혁가들은 테크놀로지의 진보로 인해 자유가 침식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벽을 쌓았다고 생각하면 대개 긴장이 풀어지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여전히 실험실에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며, 테크놀로지는 어떤 장벽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통제를 개인에게 행사하고 개인들을 더 체제에 의존적으로 만드는 길을 찾아내며 발전해 간다.

133. 사회적 조정, 법률, 제도, 관습, 윤리규약 등 그 어떤 것도 테크놀로지에 대항해 보호막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 이것들은 모두 한시적이었고 결국 변하거나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문명이 존속하는 한 지속적으로 진보한다. 예를 들어 유전공학을 인간에게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유전공학의 응용을 금지하도록 사회적 조정이 이루어져도 테크놀로지는 계속 발전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 사회적 조정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면 유전공학은 우리의 자유의 영역을 침범할 것이고, 이 침공은 테크놀로지가 붕괴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환경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134. 테크놀로지는 자유에의 열망보다 훨씬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테크놀로지 체제는 경제문제와 환경문제와 소외, 반항, 적개심 등 인간 행동의 문제 등을 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체제에 저항하는 혁망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인간의 생활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란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순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역기능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생기면서 더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높은 자동차 유지비, 교통사고, 교통체증,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동차에 의존이 심해져 자동차 없이는 살기 어렵게 되고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를 사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됩니다. 핸드폰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져왔지만 전자파 피해, 높은 사용요금, 핸드폰 중독, 위치추적과 도청 등의 부작용을 가져왔고, 인터넷 또한 정보검색과 정보교류의 장점 외에 음란물 확산과 게임중독, 도박중독, 바이러스, 가정불화 등의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와 같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크면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되고 결국 대혼란에 휩싸이거나 붕괴될 수 있습니다.

 

 

16. 더 간단한 사회문제조차 우리는 제어할 수 없다.

136. 누군가 테크놀로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면서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꿈을 꾸고 있다면 사회체제가 환경파괴, 정치부패, 마약거래, 가정폭력 등 간단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137. 환경문제를 예로 들면 경제개발과 환경과 자원의 보호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지만 이에 관한 명확하고 일관된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는 와중에 환경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결국 후손들이 문제를 안고 살게 될 것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여러 파벌간의 투쟁과 타협으로 점철된다. 투쟁의 노선도 여론이 흘러가는 대로 계속 바뀐다. 이것은 합리적인 과정이 아니고 문제를 적시에 해결할 수 없다. 수많은 이익집단이 자신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와중에 간신히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사회적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138. 인류가 단순한 사회문제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한데 자유와 테크놀로지의 공존이라는 훨씬 어렵고 미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또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체제의 이익이 될 수는 있어도 자유와 작은 집단의 자율성을 보존하는 것은 체제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테크놀로지는 명백한 물질적 장점을 제시하는 반면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게다가 자유의 상실은 프로퍼갠더와 달콤한 거짓말로 쉽게 감출 수 있다.

139. 체제는 최대한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이익이다. 체제는 보다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인간의 행동을 규제할 것이고 이는 제임스 윌슨 같은 저명한 사회과학자들도 줄곧 강조해 왔다.

 

 

17.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

140. 자유와 테크놀로지를 화해시키는 방법으로는 체제가 개혁될 수 없다. 산업-테크놀로지 체제를 모조리 잊고 사는 혁명이 필요하다. 반드시 무장혁명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의 본질을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141. 사람들은 흔히 혁명이 개혁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담고 있으므로 완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 혁명은 개혁이 이룰 수 없는 강력한 몰입력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운동은 고작해야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혁명운동은 단순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 테크놀로지의 어떤 분야를 제한하는 것보다 테크놀로지 전체를 폐기하는 것이 쉽다.

142. 변화가 너무 과도하게 진행될 경우에 초래될 고통스러운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개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혁명의 열기가 사회를 장악하면 사람들은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한다. 이런 사실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서 증명되었다. 이들 혁명에 자신의 전부를 바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이 소수는 적극적인 소수였기 때문에 사회의 지배적인 세력이 될 수 있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개인과 사회의 타락과 부패를 촉진시켜 결국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로마시대를 비롯한 고대문명으로부터 증명된 일입니다. 과학기술과 경제가 발전할수록 가정파괴와 실업문제와 빈부격차와 사회범죄와 정신질환과 자살문제가 심해진다는 것은 현재 여러 선진국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일부 농촌마을과 종교단체에서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옛날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시민보다 좀 불편하게 살지는 몰라도 훨씬 덜한 스트레스와 큰 성취감과 안정감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가족 사회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의 추세와 유행에 따라 이러저리 휩쓸리지 않고 개인적 또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발적 또는 공동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희망합니다.

* 참고 사이트 : http://blog.naver.com/amishstory

 

 

18. 인간행동의 통제

143.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조직사회는 사회 유기체의 기능수행을 위해 인간에게 억압을 가해 왔다. 억압에는 나쁜 음식, 과도한 노동, 환경공해와 같은 육체적인 억압과 소음, 인구과밀, 인간행동 개조와 같은 심리적인 억압이 있다. 과거에 인간의 본성은 대개 일관성을 유지했고, 달라진다 해도 한정된 범위 안에서 달라졌을 뿐이다. 사회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인간을 몰아치면 반란, 범죄, 부패, 노동회피, 정신질환, 출산율 감소 등 문제가 일어나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

144. 과거에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에 한도가 있기 때문에 사회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개조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

145. 사람들을 끔찍하게 불행한 조건 아래 몰아넣고 나서 사람들에게 불행을 잊어버릴 수 있는 약물을 건네주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이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에 권력과정의 붕괴로 말미암아 우울증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변화의 산물이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조건을 제거하는 대신에 항우울제를 건네주고 있다. 항우울제는 개인의 정신상태를 개조하는 수단이다. 항우울제를 먹어 가며 그 약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146.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은 현대사회가 개발중인 인간행동의 통제수단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른 수단들을 살펴보자.

147. 우선 감시기술을 들 수 있다. 많은 상점과 공공장소에 숨겨진 비디오 카메라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컴퓨터는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한다. 그리고 매스 미디어가 효과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는 프로퍼갠더를 들 수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상품을 팔며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효과적인 기법들이 개발되어 왔다. 오락산업은 섹스와 폭력물을 쏟아 부어도 체제의 중요한 심리적 역할을 수행한다. 텔레비전과 비디오에 빠져 있는 동안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불안, 좌절, 불만을 잊을 수 있다. 원시인들은 자신이나 세상에 큰 갈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몇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끝없이 무언가에 몰두해야 하고 오락거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새 권태에 빠지고 안절부절, 좌불안석, 신경질 등의 증상을 보인다.

148. 다른 기법들은 감시와 프로퍼갠더를 능가한다. 교육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배운 것을 모르면 엉덩이를 때리고 잘 알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식의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교육은 이제 어린이의 성장을 통제하는 과학적 기법이 되어가고 있다. '실반학습센터'(Sylvan Learning Cneter)는 아이들이 공부에 빠져들게 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전통적인 학교에서도 점차 심리적인 기법들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체제의 기본적인 가치체계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자녀양육법을 배우고, 체제가 제시하는 방식대로 행동한다. 정신건강 프로그램, 중재 기법들, 심리요법 등은 겉으로 보기엔 개인의 행복을 위해 고안된 것 같지만 사실은 개인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주입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149. 예상컨데 각종 연구를 통해 인간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심리적 기법들의 효과는 끝없이 커질 것이다. 심리적 기법만 가지고 테크놀로지에 의해 창조되고 있는 사회에 맞춰 인간을 개조하기란 힘들 것 같다. 결국에는 생물학적인 방법이 이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약물이 이용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신경학은 인간 정신을 개조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인간 유전공학은 유전자 치료법이란 이름 하에 이미 시작되었다.

150.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인간행동의 문제와 경제문제와 환경문제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여러 사회문제를 파생한다. 소외, 자기비하, 공부 안하는 아이들, 청소년 갱단, 불법약물 복용, 강간, 어린이 학대, 기타 범죄, 무분별한 섹스, 10대 임신, 인구증가, 정치부패, 인종간의 증오와 갈등, 극심한 이데올로기 투쟁, 정치적 극단주의, 테러리즘, 사보타지, 반정부 단체들 등이 체제의 생존을 위협한다. 체제는 어쩔 수 없이 인간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151.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사회붕괴 현상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체제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삶의 조건들이 빚어낸 결과이다. 만약 체제가 인간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하는데 성공한다면 인간의 역사는 새로운 분수령을 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인간이 가진 인내심의 한계 때문에 사회의 발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업-테크놀로지 사회는 심리적 방법이나 생물학적 방법, 또는 그 둘을 다 사용해 인간을 개조함으로써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미래의 사회체제는 인간의 욕구에 맞춰 적응하지 않는다. 반대로 인간이 체제의 욕구에 맞춰 적응하게 될 것이다.

152. 인간행동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통제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의식적 욕망에서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통제가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그것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으로 간주될 것이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한다든지 범죄를 줄인다든지 과학과 공학 연구에 몰두하도록 한다든지 말이다. 많은 경우에 통제는 인도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날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해 줄 때 의사는 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실반학습센터에 보내 공부에 열광하는 아이들로 만드는 것은 부모가 아이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153. 인간행동의 통제는 정부당국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진화의 과정을 통해 시작될 것이다. 그 과정에 저항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각각의 진보는 그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진보를 이루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해악이 나중에 이익이 되거나, 진보하지 않을 때 빚어지는 결과보다 진보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해악이 덜 해롭기 때문일 수도 있다.

154. 만약 어린에에게서 범죄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높이는 유전적 인자가 발견되고 이를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된다면 부모는 당연히 아이들을 치료할 것이다.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비인간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원시사회에선 하이테크 자녀양육법이나 가혹한 처벌 시스템이 없어도 범죄 발생율은 우리 사회에 비해 훨씬 낮았다. 현대사회의 높은 범죄율은 현대적 환경이 사람들에게 가하는 압박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압박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재적 범죄성향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을 리엔지니어링 할 것이다.

155. 우리 사회는 체제와 맞지 않는 모든 종류의 생각이나 행동을 질병으로 간주한다. 개인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할 때 체제에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개인도 고통을 겪게 되므로 질병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체제에 적응하도록 개인을 조작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치료이고 좋은 일이다.

156. 산업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 테크놀로지는 인간행동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행사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상당부분 생물학적 토대 위에 있다. 뇌의 특정부분을 전기자극하면 배고픔, 기쁨, 분노, 공포 등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뇌의 어느 부분을 다치면 기억을 잃고, 전기자극에 의해 잊혀진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약물로 환각을 일으키거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158. 모든 사람이 머리 속에 전기장치를 달고 정부당국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은 황당무계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생물학적 간섭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는 사실은 인간행동의 통제라는 문제가 기술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뉴런과 호르몬과 고분자다. 현대과학이 기술적 문제의 해결에 보여준 뛰어난 성적을 감안하면 인간행동의 통제에도 엄청난 진보가 이루어질 것이다.

159. 대중적 저항을 통해 테크놀로지의 인간행동통제를 막을 수 있을까? 통제가 한꺼번에 시작되면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테크놀로지의 통제는 장기간에 걸친 소규모 진보를 통해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중적 저항은 있을 수 없다.

160. 이런 얘기가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린다는 사람에게는 어제의 공상과학 소설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환경과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테크놀로지가 점점 더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적용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환경과 생활양식이 그래왔던 것처럼 인간 자체도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발달하게 됩니다. 요즘 골목마다 감시 카메라라 설치되어 방범, 쓰레기투기 감시, 불법주차단속 등의 용도로 사용됩니다. 목욕탕이나 찜질방의 탈의실에까지 도난을 막기 위해 CCTV가 설치됩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처음엔 반발하지만 감시와 통제가 주는 유익이 더 크면 결국 순응하게 됩니다. 무질서, 범죄, 반란 등을 막기 위해 사회는 점점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이를 뒷받침 해 줍니다. 결국에는 모든 인간을 직접 통제하고 지배하는데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생체칩인 베리칩엔 신분확인과 상품매매와 위칙추적 기능 외에 마인드 콘트롤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전파를 이용해 인간의 무의식을 조종하고 집단체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음료수나 수돗물에 약물을 투입하거나 TV 시청 중 특수한 전파를 전송해 의식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테크놀로지 발달을 좇아가기 위해 유전공학을 통해 인간을 개조할 수도 있습니다. 인체 내 칩을 삽입함으로써 전자기기와 직접 통신하게 될 것입니다.

 

 

19. 갈림길에 선 인류

161. 현대사회에서 두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나는 실험실에서 인간 행동을 조작하기 위한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기술을 사회체제의 기능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가 더 어렵다. 교육심리학의 기술은 그것이 개발된 실험학교에서는 잘 돌아가겠지만 전체 교육시스템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 교사는 아이들에게서 칼과 권총을 빼앗기 바뻐서 이들을 컴퓨터 귀재로 만들어 낼 새로운 기술로 몰아갈 시간이 없다. 인간행동과 관련된 기술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체제는 인간을 통제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회체제의 통제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사람도 있지만 체제에 저항하는 반항아들도 점차 늘고 있다. 청소년 갱단, 악마 숭배자, 나치, 급진주의자, 민병대 등이다.

162. 체제는 지금 그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과 절망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행동의 문제이다. 체제가 빠른 시간 안에 인간행동을 통제할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낸다면 체제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붕괴될 것이고 앞으로 수십년 안에 이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163. 체제가 앞으로 수십년 간의 위기에서 살아남는다면 사회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거나 통제했다는 것이다. 체제가 해결한 문제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인간을 사회화하는 것으로 인간행동이 사회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을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인간과 중요생물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논리적 귀결점을 향해 진보해 나갈 것이다. 체제는 하나의 단일한 독재조직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부와 기업체와 대형조직들이 협동과 경쟁관계를 맺고 몇개의 조직으로 나뉠 수도 있다. 그러면 인간의 자유는 거의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개인과 작은 집단들이 하이 테크놀로지와 온갖 감시장치로 무장하고 물리적 강제력과 인간을 조작하기 위한 심리적 생물학적 수단을 갖춘 거대 조직과 맞서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특권층만이 진짜 권력을 갖게 될 것이나 이들조차 제한된 자유만 누릴 것이다.

165. 반대로 체제가 다가올 몇십년 간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될 경우 환난의 시대가 올 것이다. 환난의 시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가장 위험한 사태는 산업사회가 다시 건설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이 다시 돌아가길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166. 산업체제에 의한 인류의 노예화를 증오하는 사람에게 두가지 임무가 주어진다. 첫째는 체제 안의 사회적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을 높이거나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체제를 약화시켜야 한다. 둘째는 테크놀로지와 산업사회를 공격하는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산업사회가 붕괴되었을 때 남겨진 잔재를 아예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날려 버릴 것이고, 그러면 체제의 재구성도 불가능할 것이다. 공장은 무너뜨려야 하며, 기술서적은 불태워야 한다.

 

 

20. 인간의 고통

167. 순전히 혁명적 행동만으로 산업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산업체제는 심각한 장애에 도달하지 않는한 혁명적 행동에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체제가 붕괴된다면 갑자기 우발적으로 붕괴되거나 혁명가의 힘이 보태지는 과정을 통해 붕괴될 것이다. 만약 붕괴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세계의 인구는 첨단 테크놀로지 없이는 다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 과도하게 늘어나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를 무리 없이 질서 정연하게 제거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기술 숭배자들이 매 단계마다 격렬히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가들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체제가 심각한 문제에 빠져 결국 무너지게 될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체제가 더 거대해질수록 붕괴로 인한 결과가 더 참혹해지므로 혁명가들이 붕괴의 출발을 앞당기는 것은 오히려 재앙을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

168. 우리는 투쟁과 죽음, 자유와 존엄성 상실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장수하는 것이나 육체적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자유와 존엄성이 더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공허하고 목적도 없는 삶을 오래 사느니 생존을 위해서건 운동을 위해서건 싸우다 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169. 체제는 지금까지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산업사회는 경제문제, 환경문제, 사회문제, 심리문제, 인구문제 등을 일으켰다. 핵폭탄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제3세계 국가에 들어간다면 상당히 위험할 것이다.

170. 기술 숭배자들은 과학이 기아문제와 심리적 고통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거라고 말하겠지만 그들은 200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산업혁명은 가난을 몰아내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줘야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기술 숭배자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절망적일 정도로 순진하다. 그들은 겉보기에 바람직한 변화가 사회에 일어나더라도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변화들이 연이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결과는 사회의 붕괴다. 기술 숭배자들이 가난과 질병을 몰아내고 유전공학을 통해 온순하고 행복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들려고 시도할 때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체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과학자들은 유전공학이 식량생산 공장을 만들어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면 인구는 무한정 늘어날 것이다. 인구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기술진보는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문제를 파생했다. 산업혁명 이후 테크놀로지는 낡은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 냈다. 발생한 결함을 제거하는 데는 길고 힘든 시행착오의 시간이 걸리고 그 와중에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산업사회가 생존할 때의 고통이 붕괴될 때의 고통보다 덜하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테크놀로지는 지금껏 인류를 쉽게 탈출할 수 없는 곤경으로 몰아 왔다.

 

 

21. 탈출

171. 만약 산업사회가 앞으로 수십년을 살아남고 결함을 체제에서 걸러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한다고 가정하자, 그 체제는 어떤 것일지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172. 컴퓨터 과학자들이 인간보다 일을 잘 처리하는 인공지능 기계를 개발하는데 성공하면 거대하고 고도로 조직된 기계 시스템이 모든 노동을 담당할 것이고, 인간의 노력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엔 인간의 감독 없이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여전히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도 있다.

173. 만약 기계가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기계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빚어질 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면 인류의 운명이 기계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물론 인류가 자발적으로 기계에게 결정권을 넘겨 주거나 기계가 자신의 의지로 권력을 장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인류는 기계에 종속적인 지위로 떨어질 것이며, 결국 기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계가 지능화되어감에 따라 사람들은 더 많은 결정권을 기계에게 넘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의 결정이 인간의 결정보다 더 낳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마침내 체제를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 너무 복잡해져서 인간의 지능으로는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단계가 도달할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기계가 통제권을 장악하며, 인간은 기계를 꺼 버릴 수도 없다. 기계에 철저히 종속된 인간이 기계를 끈다는 것은 자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74. 반대로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보통 사람은 자동차나 PC 등 개인 소유의 기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대형 기계 시스템의 통제권은 소수 엘리트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더 강한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탓에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체제에 떠넘겨진 쓸모 없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다. 무자비한 엘리트라면 간단히 엄청난 인구를 죽여 없앨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엘리트라면 프로퍼갠더나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활용해 출산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인구를 줄인 후 남은 세상을 독차지할 것이다. 삶은 너무 무의지해졌으므로 사람들의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제거하거나 안전한 취미로 권력욕망을 승화시킬 수 있도록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공학적 조처를 받아야 한다. 공학적 조처를 받은 사람은 해당 사회 안에서는 행복하겠지만 자유롭지는 않으며 가축의 신분으로 전락한다. 

 

* 참고서적 : 유나바머 (테어도르 존 카진스키, 박영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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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Samouraï: Death in White Gloves

By David Thomson

Tone and style are everything with Le samouraï. Poised on the brink of absurdity, or a kind of attitudinizing male arrogance, Jean-Pierre Melville’s great film flirts with that macho extremism and slips over into dream and poetry just as we grow most alarmed. So the implacably grave coolness of Alain Delon’s Jef Costello is audaciously mannered, as he puts on white gloves for a killing and announces that for him “principle” is merely “habit.” (The film deserves one moment, one shot, of him alone in his room, when the impassive noirist suddenly collapses in unexplained laughter.) Whereas, as we see him stretched out on his bed, the source of a silent spiral of cigarette smoke, like a patient, tidy corpse-in-waiting, he is not just Delon, or some against-type Costello minus Abbott. He is the distilled essence of cinema’s solitary guns for hire, suspended between the somnambulant calm of Lee Marvin in Point Blank and the self-destructive dedication that guides Robert Bresson’s priest in Diary of a Country Priest.

And in that strange juxtaposition you have so much of Melville: the French Jew who changed his real name (Grumbach) to that of the New England author; the defiantly lone operator in postwar French cinema (for years, Melville had his own studio, which burned down during the shooting of Le samouraï; did all that cool inspire heat?); the assiduous admirer and imitator of American tropes; and the tough guy who could appreciate Jean Cocteau and Bresson as easily as he could Dashiell Hammett and Django Reinhardt. You can imagine Melville’s rapture (a spiritual condition, not just professional satisfaction) when he outlined the story to Delon, only to be interrupted by the actor after ten minutes with, “This story has no dialogue so far—I will do it.” And then, finally, in mute recognition of kindred feelings of honor, Delon revealed his own room to Melville, with a samurai sword as its only piece of decor and its omen of fate.

It has always been a vital French tradition to film the commonplace, the clouded ordinariness of the banlieue, and make it poetic; this is a motif that reaches from Louis Feuillade and Jean Vigo, through Marcel Carné and Cocteau, to Mel-ville, Georges Franju, and Jean-Luc Godard. It is the atmospheric that lets us know we are in a city very like Paris, but in the mindscape of dream, too. Consider the auto shop where Jef has new plates put on his stolen cars: it is a twilit alley on the edge of town, where clouds gather in the desolate sky, dogs bark, and the mechanic never speaks.

That stealthy treatment of place was evident in Melville’s early films—in Le silence de la mer as well as in the greatest Cocteau film ever made, Les enfants terribles (directed by Melville from Cocteau’s novel and screenplay). It is there in Bob le flambeur (such a threshold to the new wave) and, of course, it is there in Le samouraï, a film in which Henri Decaë’s elegant color scheme is obsessed with gray, white, and black, the hues of classic still photography. And stillness is everything in this film, just as its hero wants to be a pool untouched by ripple or tremor.

As Melville himself said, when asked to explain the curious detachment of his films and his minimal attempt to fabricate decor or underline the photography: “I don’t want to situate my heroes in time; I don’t want the action of a film to be recognizable as something that happens in 1968. That’s why in Le samouraï, for example, the women aren’t wearing miniskirts, while the men are wearing hats—something, unfortunately, that no one does anymore. I’m not interested in realism. All my films hinge on the fantastic. I’m not a documentarian; a film is first and foremost a dream, and it’s absurd to copy life in an attempt to produce an exact re-creation of it. Transposition is more or less a reflex with me: I move from realism to fantasy without the spectator ever noticing.”

And sometimes that ease is problematic: some true admirers of Melville’s (like Bertrand Tavernier) complained that Le samouraï was nearly comically removed from French realities. “Why not?” Melville might ask, when that freedom allows us time to sink into the dream and absorb the many divergent ideas that exist in the simple claim: “Alain Delon is Jef Costello in Le samouraï.”

Take Delon first: the enigmatic angel of French film, only thirty-two in 1967, and nearly feminine. Yet so earnest and immaculate as to be thought lethal or potent. He was also close by then to the real French underworld: it was in the years right after Le samouraï that Delon and his ex-wife, Nathalie (his uncertain lover in the film, but looking like a sister), were caught up in real-life scandals of association with criminal circles. (And don’t forget that when Le samouraï was released in the U.S., after the sensation of The Godfather, in 1972, it was retitled The Godson!) Delon is not so much a good actor as an astonishing presence—no wonder he was so thrilled to realize that the thing Melville most required was his willingness to be photographed. As for “Jef,” it is American but bitten off and slightly futuristic; Jeff is also the name Robert Mitchum bears in Out of the Past. As for “Costello,” it could certainly be a reference to Frank Costello, the actual mobster. And then there is samouraï, a word that was far more novel and exotic in the 1960s, and a promise of American modes being seen through a glass of Japanese ritual.

What is a samurai? When he wears a fedora as crisp as glass and a pale trench coat that could have been sculpted by Brancusi? He is doomed. He is an icon out of his time. He is a hired killer, yet he is a last emblem of honor in a shabby world of compromise. He is a man who believes in tiny adjustments to the perfect shadow cast by the brim of his hat, who exults in the flatness with which he can utter a line, and who aspires to the last lovely funeral of brushes on a drummer’s cymbal. His essence is in timing, gesture, and glance. And he is as close to the eternal spirit of the poet as, say, Cocteau’s Orpheus.

I made the comparison earlier with John Boorman’s Point Blank and Lee Marvin. And I think that it is important. Nearly forty years after these two films were made, the crime film has gone through such lurid flights of exaggeration and stylization, and has succumbed to such terrible, unfelt violence, that they may seem nearly Etruscan or Greek in their cultural provenance. And that is largely because the two directors had such faith in the natural dreamscape of film, and such reverence for the codes of honor or perseverance that could make a criminal’s life seem heroic. Marvin, in Point Blank, and Delon, in Le samouraï, are immense cinematic forces who are hardly there or credible in literary or realistic terms. We may decide that both films are the last dream of their central characters. But then consider how rich they are in ambivalence and how much they say about our urge to experiment with the “other” life—the life of crime—through dream and film.

The story line of Le samouraï is intricate yet very simple, and quite predictable. Jef is doomed. Like us, he wonders why the nightclub pianist (Cathy Rosier) does not give him away, for she has seen him in the act. Does she love him? In a way, yes, but she is also a kind of Death figure who has selected him as Her next client. And She chose him earlier, as their two cars paused together at a traffic light. That pianist is a throwback (black, but wearing white; wearing black, but in a white chair) to the angel of death (Maria Casarès) in Orpheus.

Yet in its acting out, this “contract” ennobles and redeems Jef. It doesn’t matter that the story is slight and unmotivated. The movie can be followed, over and over again, like music, because its configurations are so mysterious, so averse to everyday explanation. Everything is in the playing or the enactment. Seen again now, Le samouraï looks like a film from an earlier age, one made at a time when great films were necessary (and regular), because they demonstrated and fulfilled the nature of the medium. Now that the medium is in ruin or chaos, Le samouraï looks as abstract, yet as beautiful and as endlessly worthy of study, as the Giotto frescoes in the basilica in Assisi. That which seemed fanciful has become an eternal and luminous lesson in how men behaved when they believed behavior ma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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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노동이며, 특정 기능을 위해 종사한다.

예술은 한 사람이 가진 고민을 백일하에 드러낸 후 특정 관점에서 바라보며, 여러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예술은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허리에 매는 공구벨트만큼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노리개가 아니다. 예술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손대는, 그런 일이 아니다.

예술은 노동이다.

그리고 예술 작품은 장인의 작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예술혼이 제대로 구현된다면, 그리고 예술이 여러분의 고민을 드러내고 정리한 후 특정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면, 예술의 원재료는 바로 독자 여러분이다.

우리의 삶이 바로 예술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영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작가들은 영화를 연구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을 연구해야 한다.

신참작가들은 자신을 연구하는 게 상업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이야기는 모두 모작에 불과하다.

틴에이저를 노린 기획영화나 액션 영화를 베끼고 싶어하는 스튜디오가, 무엇 때문에 신참작가를 고용하겠는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촬영 계획에 맞도록 원하는 시간에 써 오는, 재능은 완벽하지만 정신은 썩을 대로 썩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떼거지로 있는데 말이다.

스튜디오가 일천한 경력을 가진 사람과 부대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여러분이 신참 작가라면, 여러분이 내놓아야 하는 소재는 여러분 자신에 관한 것뿐이다.

여러분의 인생사에는 독특하면서도 값어치가 있는 소재가 반드시 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물론 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집필할 때, 당신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를 말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된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인생사에 있어서 다른 이들과 다른 측면보다는 다른 이들과 같은 측면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메타포를 만들어라.

 

    작가가 되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고민 가운데 가장 골치 아픈 것들을 직시하며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더러운 빨래를 빠는 세탁업 종사자다.

예술은 금지된 소재,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 입밖에 내지 않은 또는 입밖에 낼 수 없는 것들을 다룬다.

더러운 빨랫감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걸 못하겠다면, 당신은 분야를 잘못 택한 것이다.

여러분이 감추고 있는 섬뜩한 비밀들은, 까놓고 보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여러분은 그 비밀을 많은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

고민을 찾아냈다면, 다음에는 그 고민에 대한 메타포는 고민과 비슷하진 않다.

메타포는 고민의 또 다른 변형이다.

처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택시 드라이버> 때였다.

그 영화의 고민은 고독이고, 메타포는 택시다.

뉴욕의 하수구 위를 떠다니는 촌스러운 색깔의 철제관, 사회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외톨박이인 남자가 안에 웅크린 채 밖을 내다보고 있는 쇠로 된 상자 말이다.

택시라는 메타포의 위력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나는 그 메타포를 고독의 메타포로 거듭 사용할 수 있었다.

영화 초반에 로버트 드 니로가 고독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첫 시사를 본 스콜세즈와 나는, 택시 자체로도 전달하고 싶은 바를 모두 전달했으니 그 장면을 잘라내도 된다는 걸 알았다.

 

    <백경>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위대한 작품은 탄탄한 메타포의 구현체다.

정말로 탄탄한 메타포는 플롯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시나리오는 플롯을 이리저리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메타포를 발견하는 게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메타포를 찾아내고 나면 줄거리를 시작할 지점은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

메타포가 중요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 플롯과 서브플롯, 케릭터가 아주 혼란스럽게 뒤섞이기 때문이다. 전개 방향이 꽉 막힌 장면에 맞닥뜨릴 경우 여러분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이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메타포를 아는게 유리한 까닭이 여기 있다.

 

    가끔은 메타포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럴 경우, 그 메타포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준, 메타포의 기저에 깔린 고민거리가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보완하는 작업만 하면 된다.

메타포가 드러나기 전에 고민거리가 먼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아메리칸 지골로>의 고민거리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이었다.

당시 나는 UCLA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수업을 진행하던 중 내가 물었다.

"이 사람은 무슨 일을 하지? 세일즈맨인가? 비즈니스맨인가? 목수인가? 지골로인가?"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지골로.

이거야!

이게 바로 메타포야!'

사랑을 제공하는 사업에 종사하는 남자가 여기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가 된다.

정반대의 소재를 채택해서 고민거리를 해결한 것이다.

 

    중년에 대한 영화 <라이트 슬리퍼>(92)를 만들고 싶었던 나는 몇 년 동안 고민거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딴 여자와 같이 하고 싶어 아내를 떠나는 남자, 또는 아내를 버리고 여행길에 오르는 남자 등 클리셰란 클리셰는 모조리 동원했다.

너무 빤하고 너무 지루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꿈을 꿨는데, 내가 알던 마약상 하나가 꿈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4시였다.

'그 사람을 5년 동안이나 못 봤는데,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 이유는 뭐지?'

내가 그를 1년 동안이나 찾아다녔지만 찾아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나한테 쫓겨다니는 데 지친 그가 마침내 나를 보러 온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타락한 캐릭터인 마약상이 내 중년을 대변하는 주인공이었다.

그가 겪는 중년의 위기는 내가 겪는 중년의 위기였다.

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꿈에 나타난 날 저녁에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를 3주만에 완성했다.

영화를 만드는 데 18개월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메타포뿐이었다.

마약상이 그 메타포였다.

메타포는 고민거리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메타포와 고민거리 사이에 갈등을 조장해야 한다.

당신의 앞길에 빛을 비추고 싶다면, 메타포와 고민거리라는 두 갈래 길이 맞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 사이에는 여러분이 뛰어넘어야 할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입으로 시나리오를 써라

 

    메타포를 확립한 다음에는 플롯의 싹을 틔우는 단계로 진입한다.

내가 집필에 대한 얘기를 아직까지도 꺼내지 않았다는 걸 유념하라.

플롯은 세 번째로 중요한 일이다.

고민거리를 메타포로 쑤셔박은 후에는 플롯이 어떻게 가지를 쳐 나가는지 보라.

무슨 일이 생겼는가?

일들이 벌어진다.

플롯을 탐구하다 보면 고민거리의 진정한 본질이 드러난다.

<택시 드라이버>의 경우, 나는 이 이갸기가 고독에 관한 이야기라고 짐작했다.

너무나 단순한 플롯이었다.

주인공은 원하는 여자를 얻지 못한다.

주인공은 '얻을 수 있는 여자'를 원치 않는다.

주인공은 아버지 같은 존재를 죽이려 들지만 실패한다.

그는 아버지 같은 다른 존재를 죽인다.

이게 플롯이다.

그런데 플롯 작업을 하다보면 진짜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택시 드라이버>의 고민은 고독이 아니었다.

그의 고민은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고독'이었다.

<택시 드라이버>의 고민거리는 자기 자신을 고독하게 만드는 병리현상이었다.

예술의 치유적 속성이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거기다.

여러분은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

여러분 자신이 고독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렇게,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이해해가기 시작한다.

 

    다음 단계는 입으로 시나리오를 구축하는 단계다.

나는 시나리오 집필은 저술 활동이 아니라 이야기를 구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나리오 집필은 위대한 문학작품보다는, 오리사냥을 가서 새들을 쫓아낸 삼촌들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서 천부적 언어 능력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훌륭한 이야기를 말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45분짜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영화 한 편이 완성된 셈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무나 붙잡아라.

여러분하고 각별한 사이가 아닌, 그리고 소위 시나리오라는 예술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면 더욱 좋다.

그 사람과 술 한 잔 하면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줘라.

얘기하라.

그들을 살펴라.

그들의 눈을 살펴라.

그들의 손을 살피고 엉덩이가 들썩거리는지 살펴라!

그들의 주위가 산만해지는 지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위가 산만해지는 지점을 개선하라.

이야기가 정말로 재미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30분쯤 지나서 화장실에 갔다 와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 보라.

그리고 사람들이 이야기 끝이 어떻게 되는지 묻나를 확인하라.

여러분이 한 이야기가 먹혀들었는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과정은 아웃라인으로 이어진다.

아웃라인은 여러분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모아 놓은 목록이다.

1번 신, 연단에 선 남자, 사람들이 일어나서 떠난다.

2번 신, 혼자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남자, 분위기 조성.

3번 신, 집에 왔지만 아무도 없다.

아내는 어디에 있는가?

4번 신, 남자가 통화를 한다... 충분히 많은 신을 확보했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처음 이야기할 때 20분 정도밖에 안됐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더 많은 사건이 첨가된다.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 때면 소설 속에 총을 든 남자를 등장시키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총을 든 남자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쁜 독자들은, 그 남자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묻지도 않는다는 거다.

이야기를 하는 데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산만해지면,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빨간 스포츠카에서 내리게 만들어라.

쾅!

사람들 귀를 다시 붙들어맸고, 빨간 스포츠카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둘도 확보했다.

이제 그들을 어디에 써먹을지만 고민하면 된다.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집에 돌아가, 여러분이 바꾼 것들을 메모한 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라.

 

 

시나리오 쓰는 데 20일이면 충분하다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팔리지 않을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힘빠지는 일은 없다.

숱한 테스트와 장애물을 있는 힘을 다해 헤치고 왔는데 그 시나리오를 영화화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만이 즐거운 일을 한 셈이다.

6달 동안 시나리오를 쓴 다음 엉망인 작품을 썼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아이디어를 놓고 6주 동안 고민하다가 못하겠다고 포기하고 걸어나가는 편이 낫다.

종이에 한 글자라도 적기 전에 이 아이디어를 정말로 시나리오로 쓰고 싶은지 고민해 보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여러분은 아웃라인을 잡았다.

이야기를 했다.

다시 이야기를 했다.

다시 아웃라인을 잡았다.

그 이야기를 끼고 산 거다.

그런 다음에는 그 아이디어가 여러분을 거부하면서 따분하게 만드는 순간이오거나, 점점 강렬한 이야기로 발전하면서

"가서 타자기 가져와, 시작할 때가 됐어."

라고 말을 붙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일단 아이디어가 집필되기를 원할 경우, 그 다음 일은 빠르게 진행된다.

정말로 집필되기를 원하는 아이디어의 경우 열흘에서 20일이면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준비하는 것이 전부다.

어느 학생이 "이 시나리오 좀 읽어 보실래요? 대단한 건 아니에요. 2주 동안 쓴거거든요"

라고 말하면 내 귀는 쫑긋할 것이다.

 

    아웃라인을 잡는 방법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구술하는 데만 유용한 방법이 아니다.

시나리오 페이스를 조절하는 데에도 유용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모든 신이 적혀 있는 명단을 만들고 신 옆에 페이지 길이를 적어 넣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연단에 선 남자, 1페이지.

집으로 드라이브, 4분의 1페이지 식이다.

아웃라인을 잡다 보면, 35페이지에 어떤 사건이 적히게 될지 알 수 있다.

76페이지에 어떤 사건이 있을지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집필하기도 전에 시나리오 전체를 완성한 거나 다름없다.

시나리오를 구술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를 집필하다 보면 반드시 달라지는 게 있다.

그건 희소식이다.

그런데 살인자가 주인공의 의붓동생이라는 사실을 65페이지에서 알게 되도록 아웃라인을 잡았는데 실제 시나리오에서는 85페이지에 그 사건이 적혀 있다면, 여러분은 아웃라인을 잡을 때나 집필 과정에서 실수한 거다.

어느 쪽인지 결정해야 한다.

아웃라인을 잡을 때 실수한 거라면, 자리에 앉아 집필 과정에서 배운 것을 반영하여 다시 아웃라인을 잡아야 한다.

집필 과정에서 실수한 거라면, 시나리오로 돌아가서 20페이지를 어떻게 들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창조성과는 거리가 한참 먼 집필 방식 같지만, 이 방법은 효과를 입증받았다.

 

    아웃라인에서 시작해서 시나리오 첫 페이지까지 왔다.

이 단계에 집어넣어야 하는 시공간적 배경 설명과 캐릭터에 대한 정보는 작가들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드는 쥐약 같은 것이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너무 지루하지 않게 설명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당신은 대사를 통해 플롯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나 대사가 사람들을 이어주는 수단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걸 명심하라.

해롤드 핀터가 말했듯, 언어는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려고 사용하는 도구다.

신참 작가들은 뻔하고 단선적인 방식으로 대사를 쓴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식으로 대사를 쓴다.

신참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다보면 갑자기 앞에서부터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질문을 듣기 전에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하는 것은 실생활에서도 많이 벌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얘기한 방식으로 시나리오에 접근한다.

정직한 작가라면 누구나 스스로 집필 방법을 배웠다는 걸 인정할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의 글을 읽은 후 자기만의 집필 방법을 고안해 낸다.

시나리오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거나 이게 바로 비법이라거나 하는 식의 규범을 제시할 수는 없다.

비법 따위는 없다.

그냥 내가 해온 방식을 얘기해줄 수 있을 뿐이다.

영화산업 전체가 몰락 일보직전일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스토리텔링이 여전히 건재하는 데 말이다.

나는 영화가 없어진대도 눈 하나 까딱 않을 것이다.

영화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나는 망치를 내려놓고 드라이버를 손에 넣은 후, 작업할 다른 매체를 찾아갈 것이다.

시나리오는 영화라고 부르는 신성한 존재에 관한 예술이 아니다.

내게 있어 시나리오는 스토리텔링과 자기탐구를 위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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