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책, 공부 2011. 1. 31. 23:11

http://www.youtube.com/watch?v=aja-8sYjNaY

TEDxSEOUL 김영하

글쓰기는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한 문장의 픽션을 감당하기 위한 나머지 글을 생각하는 행위.
예) 카프카 <변신>의 첫 문장.
어느날 불안한 잠에서 깬 그레고르 잠자는 갑각류로 변해 있는 이불 속의 자신을 발견했다.

한예종에서 수업할 때. "내가 가장 불행했던 순간"과 같은 간단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게 시키는데, 
5분만 생각하게 하고 한시간, 두시간 동안 미친듯이 쓰도록 독려한다. 
이게 생각할 시간을 길게 주는 것보다 훨씬 좋은 글이 나오는 방법이다.
왜냐 하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예술의 적, 예술가의 악마가 마음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게 글이냐? 남에게 비웃음이나 당할 걸? 따위의 예술을 하지 말아야 할 수만가지 이유가 바로 그 악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가가 되지 말아야 할 수만 가지 이유보다 예술가가 되어야 할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문학단상 13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될까


나는 1995년에 <리뷰>라는 잡지에 <거울에 대한 명상>이라는 단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폐간되고 없는 이 잡지에 소설을 보낼 때, 내 주변의 문우들은 만류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제대로된' 등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성미 급한 20대였고  '제대로된' 인정을 기다릴만큼 느긋하지를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 작가로 '행세'하고 있었고 그 성급한 자기확신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신춘문예가 소수의 당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물론 그 복음은 매우 한시적이며 그들에게는 밥벌이를 향한 또 한 번의 엄혹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에게 새해 첫날부터 울적한 소식을 전하는 이 무렵, 스스로 작가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실은 오래 전부터 이미 그래왔다는 것을 낙선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작가는 신분이 아니라 직업이라고(이때의 직업이란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긍지라고. 그리고 그 자기 확신은 심사위원의 인정보다 책상 앞에 놓인 자신의 원고로부터 올 때 더욱 확고하다.
언젠가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정식화한 적이 있다.
"작가가 되려면 이미 작가여야한다."

문학을 시작하기 위해서 선배 작가/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되는(또는 된다고 믿는) 상황은 분명 이상하다. 문학계가 중세의 길드여서는 곤란하다. 나는 문학은 반역의 언어적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인정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를 작가로 선언하고 제멋대로 써제끼는 새로운 작가군의 출현을 고대해본다.


http://kimyoungha.com/tc/147


소조님은 '외부의 인정이 없이 자기만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예술가는 바로 그런 정신적 어린이들이 나르시시즘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힘들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과대망상, '모두가 나의 재능을 시기하고 있고 그것이 내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믿는 피해망상도 예술가라는 이 힘들고 답이 안 나오는 일을 지속하게 만든다. 그렇다. 예술가들은 일종의 환자다. 그들이 앓는 질병은 독초에서 추출한 약물처럼 '결과적으로' 이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소조님이 작가지망생들에게 주는 충고는 매우 현실적이다. 새겨들을만 하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것은 평론가나 사무원의 일이다. 그와 달리 예술가는 어마어마한 자기확신을 가지고 현실의 풍차를 향해 돌진할 필요가 있다. 소조님은 '재능'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 예술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운이다. 그 운이 올 때까지 자신을 지탱해줄 강력한 자기확신이 필요하다. 내게도 오직 과대망상만이 유일한 후원자였던 세월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그 과대망상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현실을 뛰어넘는 과대망상을 감당하기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그렇지만 계속 써나간다.


소조님은 작가지망생들에게 냉정한 자기 인식'과 '길드'를 권한다. 여기에서 나와 길이 갈라진다. 냉정한 자기 인식은 예술가가 아니라 증권시장의 투자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의 말대로 새로운 '길드(제도)'를 조직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승자라는 것은 문학계의 4.19 세대들이 이미 보여준 바 있다. 현재의 등단 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나중에 더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등단제도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그것이 문학제도 전반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 개인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줄 좋은 친구/후원자이고 그 첫번째 후원자는 언제나 예술가 내면에 숨어있는 과대망상의 어린 자아일 것이다.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얘기다. 새로 시작하는 예술가에게 세상물정에 밝은 현실적 어른은 필요없다. 자기 세계를 창조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대체로 어린이들이며 예술계의 혁신자들은 바로 이런 정신적 어린이들이었다. 그 어린이들은 '현실적인' 어른들이 하는 '현실적인' 조언을 얼마간은 귓등으로 흘려들을 필요가 있다. 비현실적 망상이 대단히 낮은 확률로 현실이 되는 세계, 그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여, 미쳐라" 혹은 "예술가는 아이가 되어야한다" 는 말이 낭만주의적 헛소리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조언인 까닭이 거기 있다.


문학단상 15 낭만주의자는 어떻게 현실을 보는가



그러나 제도가 어떤 해결책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의 철학과 세계관이 관련돼 있고, 그것으로 먹고 사는 이들(예컨대 대학의 선생들)의 생계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기 이전에 예술가 개인의 자세를 정확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선은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한 후에, 예술이 주는 즐거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일생의 업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고려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 내면의 열정이다. 낭만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받아도 어쩔 수 없는 게, 이것이야말로 본질이기 때문이다. 소조님 말마따나 '프로페셔널하'게 글을 쓴지가 올해로 17년째이다. 그간 나를 지탱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서 원고를 타이핑하는 순간의 기쁨, 내면의 깊은 문제를 이야기의 형태로 바꾸면서 얻는 성숙의 즐거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갈 때의 희열 같은 것이었다. 다른 것은 부차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 내면의 어린이다 .나르시시즘에 기대 스스로를 지탱하면서 과대망상을 연료로 앞으로 전진해간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 역시 생계마저 어려운 지경이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소설가로 살아올 수 있었을까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기 형편에 따라 예술적 열망과 타협해가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나보다 살림이 윤택한 작가도 있겠고 형편이 어려운 작가도 있겠지만 모두들 나름대로 생계와 예술 창작이라는 난제를 조율해간다. 내 서가에 꽂힌 작가 평전들은 위대한 선배 작가들이 이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그리고 최후까지 내면의 어린이/극복할 수 없는 정신적 문제들과 씨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박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나, 조울증, 낭비벽, 커피중독과 싸웠던 발자크,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자신을 혐오하던 프로이트(그렇다, 바로 그 프로이트다)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소설을 성인의 예술이라고 할 때, 그것은 장편소설에 요구되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성숙한 시선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롤리타>의 험버트, <돈 키호테>의 돈 키호테, <마담 보바리>의 엠마 보바리는 우리 내면의 미성숙한 자아를 대변하고 있다. 이 문제적 성격을 포착하기 위해 작가들은 성인의 성숙하고 숙련된 눈과 어린이의 미성숙한 면을, 마치 언제나 쓸 수 있는 양날의 칼처럼 내면에 감추고 있어야한다. 우리는 양자를 잘 조화시켜 성취를 이뤄낸 작가를 대가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작가들 내면의 이 말썽꾸러기의 어린 자아는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작가를 끌고 가는 기관차이고, 우리가 한없이 고착/탐닉하게 되는 마음의 질병이기도 하다(나는 소조님이 이런 것을 모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이 한국문학의 미성숙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그 반대의 포지션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자, 다시 출발선에 선 작가지망생들의 문제로 돌아오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술가 개인은 시장의 규모도, 진입장벽의 높이도, 정치 제도도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이게 결국 내가 '낭만주의적 '예술가관으로 돌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작가인 나에게 시급한 것은 지금 당장 내 내면의 문제와 대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변화는 다음 문제다. 예술가의 길을 꿈꾸는 이들 역시 엄존하는 세계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되, 그 끝 모르는 사막을 건너갈 연료가 탱크에 충분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 메아리 없는 혹한의 골짜기에서, 한없이 계속될지도 모를 소외와 무시 속에서 자기 예술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살펴야한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스스로 내려야한다. 선생과 친구, 심사위원에게 재능을 물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확인된 재능의 유효기간은 매우 빨리 끝난다. 그때는 다시 자기 내면의 연료를 확인해야한다. 지치지 않는 어린이를 발견해야한다. 예술을 놀이로 생각하는 미친 자아를 만나야한다.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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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wo days after I sawMartin Scorsese's new film, "GoodFellas," the mood of the characters lingered within me, refusing to leave. It was a mood of guilt and regret, of quick stupid decisions leading to wasted lifetimes, of loyalty turned into betrayal. Yet at the same time there was an element of furtive nostalgia, for bad times that shouldn't be missed, but were.

충성에서 배신으로, 근데 마피아 시절을 은근히 그리워하는 아이러니한 무드.

mob wives never went anywhere or talked to anyone who was not part of that world, and eventually, she says, the values of the Mafia came to seem like normal values. She was even proud of her husband for not lying around the house all day, for having the energy and daring to go out and steal for a living.

마피아 와이프들 세상에 빠져 사니, 그 세계의 논리가 체화됨. 도둑질하느라 바쁜 게 자랑스러움

That was the life he wanted to lead, the narrator tells us. The memory may come from Hill and may be in Pileggi's book, but the memory also is Scorsese's, and in the 23 years I have known him, we have never had a conversation that did not touch at some point on that central image in his vision of himself - of the kid in the window, watching the neighborhood gangsters.

다름 아닌 스콜세지 자신의 반영. 어린 시절 창 밖으로 갱들을 바라 보던.

It isn't about any particular plot; it's about what it felt like to be in the Mafia - the good times and the bad times. 

특별한 플롯이 없다. 그저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만.

We follow them through 30 years; at first, through years of unchallenged power, then through years of decline (but they have their own kitchen in prison, and boxes of thick steaks and crates of wine), and then into betrayal and decay.

처음엔 호시절, 그리고 쇠락, 그 담엔 배신과 부패.

From the first shot of his first feature, "Who's That knocking at My Door" (1967), Scorsese has loved to use popular music as a counterpoint to the dramatic moments in his films.

항상 유명한 음악을 영화의 드라마적 순간과 대위법적으로 사용하는 스콜세지.

This is the sequence that imprinted me so deeply with the mood of the film. It's not a straightforward narrative passage, and it has little to do with plot; it's about the feeling of walls closing in, and the guilty feeling that the walls are deserved. The counterpoint is a sense of duty, of compulsion; the drug deal must be made, but the kid brother also must be picked up, and the sauce must be stirred, and meanwhile, Henry's life is careening wildly out of control.

마지막 쫓기는 듯한 시퀀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장이 되는 무드를 남긴 시퀀스. 죄의식과 의무감의 공존.

Many of Scorsese's best films have been poems about guilt.
"GoodFellas" is about guilt more than anything else. But it is not a straightforward morality play, in which good is established and guilt is the appropriate reaction toward evil. No, the hero of this film feels guilty for not upholding the Mafia code - guilty of the sin of betrayal. And his punishment is banishment, into the witness protection program, where nobody has a name and the headwaiter certainly doesn't know it.

결국 죄의식에 관한 거. 근데 범죄에 대한 게 아니라 동료를 배신한 것에 대한.

What finally got to me after seeing this film - what makes it a great film - is that I understood Henry Hill's feelings. Just as his wife Karen grew so completely absorbed by the Mafia inner life that its values became her own, so did the film weave a seductive spell. It is almost possible to think, sometimes, of the characters as really being good fellows. Their camaraderie is so strong, their loyalty so unquestioned. But the laughter is strained and forced at times, and sometimes it's an effort to enjoy the party, and eventually, the whole mythology comes crashing down, and then the guilt - the real guilt, the guilt a Catholic like Scorsese understands intimately - is not that they did sinful things, but that they want to do them again.

이 영화가 위대한 이유는 마피아의 삶에 폭 빠져서 헨리 힐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영화의 매혹 때문이다.
그리고 스콜세지의 진정한 죄의식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게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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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돌아오시면 내년에 셰익스피어를 중점적으로 수업하신다고 하셨기에,

오시기 전에 미리 저희끼리 함께 모여서 읽고 공부하는 자리를 마련할까 합니다.

 

선생님이 정해주신 작품 6개를 함께 읽고

그와 관련된 서양사를 스터디 형식으로 공부하는걸 목표로 할 예정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매월 격주로 첫째주, 셋째주 목요일 저녁 7시

  합정역 부근 커피숍에서 모임.

 

 

1.  첫주엔 서양사 스터디.

 

서양사 강의

배영수

한울아카데미 2009.02.20

1강 고대 지중해 세계

2강 기독교와 중세 유럽의 형성

3강 본건사회의 성립과 발전

4강 봉건 사회의 해체

5강 초기 자본주의와 국가

6강 근대정신과 문화의 대두

7강 프랑스 혁명

8강 산업혁명

9강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10강 19세기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내용은 위와 같고요. 1인이 1강을 발제하여 발표하는걸로 할까합니다.

한주에 2강씩 소화할거고요. 그럼 대략 3~4시간 정도 걸릴 듯 해요.

참고하시면 좋을 듯.

 

 

2. 셋째 주엔 셰익스피어 작품 강독

 

- 선생님이 정해주신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햄릿> <리어왕> <오델로>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 원래는 맥베스도 추천해주셨는데, 사실은 이번달에 비공식적으로 진행을 해서리

  이 작품은 빼고 갈 예정입니다.

- 위 작품들은 형설출판사 판본을 원칙으로 하려 합니다.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데다가 나중에 수업하실때도 이 판본을 활용하실 예정인듯합니다.

  그래서 저희도 아예 스터디 진행을 이렇게 진행하려 하니 참고해주세요.

  (문제는 리어왕과 줄리어스 시저가 절판되었을텐데 스터디 참여하시는 분들에 한해서

  제본을 할까 합니다. 참고해주세요. ^^)

- 강독과 더불어 모이시는 분들의 의견을 통해서 필사도 진행할까 합니다.

  필사는 직접 작품을 그대로 타이핑 하는 작업인데요. 선생님이 저희 조교들한테 시키신 거랍니다.

  스터디 통해서 함께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 제안드립니다.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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