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인터뷰 “(난해한) 내영화 이해는 관객 몫” (58 Berlinale) | [2008-02-13 11:47:03] |
[ 뉴스엔 홍정원 기자 ] 홍상수 감독이 제58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밤과낮’(제작 영화사 봄)에 관한 생각을 현지에서 전해왔다. ‘밤과낮’은 경쟁부문에 오른 21편 작품 중 유일한 한국영화다. 12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11시30분 독일 베를린 하얏트 호텔에서 ‘밤과낮’ 언론시사회 후 가진 공식기자회견에서 배우 김영호, 박은혜와 나란히 앉은 홍상수 감독은 체코 기자의 첫 질문에 말문을 열었다. 오전 9시 영화제 메인 극장이자 경쟁부문에 초청된 감독과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베를린날레팔라스트에서 ‘밤과낮’ 첫 언론시사회를 개최했다. 국내외 매체들이 대거 참석해 90%가 넘는 참석률을 보여 영화에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영화 상영 내내 현지 관객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밤과낮’은 처음 피운 대마초 때문에 서울에서 파리로 도피하게 된 유부남 국선 화가의 유쾌하고 기이한 여행 이야기다. 영화 초점은 여자들의 관계와 사랑에 맞춰져 있다. 국선 화가 김성남은 파리로 도피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슬픔과 자괴감에 빠지던 중 젊은 미술학도 유정을 알게 된다. 김영호가 성남을, 박은혜가 유정을, 황수정이 성남의 아내, 성인을 맡았다. 국내에는 오는 28일 개봉된다. 다음은 홍상수 감독이 외신들과 가진 현지 기자회견 내용이다. -감독의 영화를 보고 매우 감동 받았다. 나는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고 독일 사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다. 홍 감독 영화는 한국의 정체성과 신비성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땐 한국의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발전이 한국 정서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가? 아니면 에릭 로메르 감독 영화 같은 프랑스 스타일의 영감을 받은 걸 보여주려고 하는 건가? 즉, 이 영화가 윤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한국사회에 관한 영화인지 궁금하다. ▲나는 한국 정치나 역사에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다. 단지 어떤 특정한 것에 관심이 있고 내 개인적인 관심을 통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중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 남자들이 유럽에 와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싶었나? 아니면 에릭 로메르 식의 스타일을 본받으려고 한 건가? ▲나는 세계의 많은 예술인들을 존경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예술 정신들이 내 영화를 만들 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모방한다거나 어떤 특정한 영화를 내 영화로 만드는 건 아니다. 나는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주인공에 대한 홍 감독의 감정은 어떤 건가? 남자 주인공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나? 혹시 남자 주인공이 이기적이고 주위 사람들을 지적하는 걸로 그려낸 건 아닌가? ▲영화 속 주인공들을 만들 때는 아무 사람을 가지고 만들 수는 없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 안에 내가 아는 소수 사람들의 성격이 반영된다. 그렇기에 내 영화 속 주인공은 내 주변 인물의 일부를 대표하기도 하고 내 세계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캐릭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이다. 뭘 전달하고자 할 때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전달하려고 한다. 개인마다 얻어낼 수 있는 것이 각각 다르니까. 게다가 인물 자체가 웃기거나 재미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좋다. -작가주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한국영화 시장이 지금 예술성과 시장성을 함께 고민하고 있는 상황인데 앞으로 곧 개봉될 이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밤과낮’의 핵심키워드는 꿈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홍 감독이 떠올렸던 이 영화의 특별한 주제 혹은 키워드는 무엇인가? 또 ‘밤과낮’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할 건지는 모르겠다.(웃음) 딱히 이 영화 안에는 무슨 키워드는 없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는 있었다. 내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밤에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는데 그 때 와이프가 한국은 낮이었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쇼핑하면서 전화를 받았던 거다. 그 때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다. 아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교환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시간대가 정반대였던 거다. 보통 사람은 시간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아침에 깨어나고 점심에 일하고 저녁에 잠드는. 그런데 전혀 다른 시간대 있으면서도 감정을 교환하는 게 굉장히 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밤과낮’은 그냥 단순한 제목이다. 보통 제목이라는 건 영화 자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단순하고 질리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밤과낮’은 방금 내가 말한 에피소드를 경험으로 나온 거고 분석하고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제목으로 지은 게 아닌 마음에 들어 결정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베를린 오전 시간에 선사해줘 감사하다. 영화에서 보면 공간은 프랑스인데 계속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있다. 한국 예술가들이 친구들을 방문하는 모습이 원래 그런 건가? 그리고 밤은 여자고 낮은 남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건가?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이 파리에서 배회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장면을 보면 남자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가진 견해만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많은 다른 일들이 파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지만 단순히 남자 주인공의 시선 안에만 보이는 것을 의식적으로 제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는 프랑스 친구가 등장하는 게 아니고 프랑스 사회와 어떠한 연결도 없다. 또 원래 파리에는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있고 한국에서 유학을 많이 가는 편이다. -이 영화를 만들 때 마치 한 편의 일기장처럼 만든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처음 만들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기 형식을 채택했던 것은 문학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 번 영화에 적용시켜 보고 싶었다. 일기장 형식이라는 건 하나하나의 독립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인물이 움직이면서 하루와 하루간의 연결성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하루와 하루의 모습들이 대립을 보여주기도 한다. -홍 감독의 첫 번째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마지막 꿈 장면에서 돼지가 등장한다. 이 영화와 첫 번째 영화는 뭔가 연관성이 있나? ▲첫 번째 영화를 염두하고 꼭 돼지를 등장시킨 건 아니다. 어릴 때 읽은 시가 하나 있는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목욕탕을 지나가는데 목욕탕으로 이상한 동물이 지나가는 그런 시였는데 그 이미지가 떠올라 이 영화에 등장시킨 것이다. -영화의 끝인 꿈 장면에 대해 말해달라. 여러 가지 관계가 혼합된 엔딩인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의 입장에 따른 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된 바탕이 있겠지만 그와는 별도로 자기만의 현실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꿈이라는 건 개개인의 일상생활 중 일부다. 사실 꿈이라는 것은 깨어있을 때와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꿈과 현실이라는 걸 문제 없이 복합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홍정원 man@newse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