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영화 2008. 2. 21. 17:52

우스꽝스런 도피로 시작 거짓말로 구원받는 엔딩
[ 시티신문 ㅣ 2008-02-21 15:2 ]

영화 ‘밤과 낮’ 감독 홍상수

아내와의 통화서 착안 - 시나리오 단숨에 완성

베를린서 수상 못해 아쉽기 보다 다음 기회 생긴듯해 오히려 후련

내 직감-트렌드 맞으면 좋을텐데, 베드신에 대한 통념깨기도 힘들어

영화는? 내가 더럽게 못만드는 것

“수상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다음 영화를 찍을 기회가 생긴 걸로 만족한다”
여덟 번째 영화 ‘밤과낮’으로 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홍상수 감독은 수상 못한 것이 아쉽기보다는 다음 기회가 생긴 것 같아 후련하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20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 감독은 “사람들은 코드가 맞는 영화를 선호하기 마련”이라면서 “여태껏 내 영화는 주제를 향해 올라가는 피라미드 형식이 아닌 구(球)와 같아서 쌍으로 모순되는 점들을 많이 담아내려고 했다.

모든 평가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28일 국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는 ‘밤과 낮’은 대마초를 피우고 파리로 도피한 화가 성남(김영호 분)이 우연히 옛 여자친구를 만나고 또다른 여자(박은혜 분)에게 빠져들지만 결국 한국에 있는 아내(황수정 분)에게 돌아오는 여정을 그렸다.


평소 일상적인 상황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영화의 소재로 이용하는 홍 감독에게 이번엔 어떤 직감이 ‘밤과 낮’을 만들게 했는지를 묻자 “뉴욕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실내 흡연이 금지된 호텔을 빠져 나와 아내와 국제전화를 했는데 아내가 슈퍼마켓에서 받는 통에 무척 시끄러웠다.

여긴 밤이고 추운데 다른 곳은 환한 낮이라는 설정이 순간적으로 와 닿았다”면서 “우스꽝스런 도피를 한 영화 시작과 유치한 거짓말로 구원받는다는 엔딩을 정하고 일주일 만에 써 내려갔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영화의 제목도 미리 정해놓고 시작했다는 ‘밤과 낮’은 해외언론으로부터 ‘누벨바그에 대한 홍상수의 헌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작들에 비해 배우들의 노출이 적은 것에 대해서는 “그동안 작품에 있어서 (배우들의) 벗고 안 벗고의 취향이 확실한 내가 대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배우들을 벗기는 게 힘들어졌다.

(웃음) 앞으로 아주 결정적인 뭔가가 없는 이상 그런 장면은 찍지 않을 것”이라면서 “베드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좀 깨고 싶었는데 관객들이 그 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예민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극중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와 디테일한 소품이 와 닿았다고 하자 “배우들에게 평소 잘 입는 옷을 20벌 정도 찍어오라고 해서 캐릭터와 맞지 않는 건 탈락시키고 어울릴 만한 걸로 다시 채워 촬영을 진행한다.

직감을 믿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서로에게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흡수되는 관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고 밝혀 홍상수식 영화가 어떻게 탄생되는지를 가늠케 했다.


이어 상업영화와 다른 노선으로 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장르적 고민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홍 감독은 “제작비 정도는 회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한국영화가 위기인 만큼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을 느낀다.

내 직감과 당시 트렌드가 맞으면 잘될 텐데, 어느 한쪽으로 맞추기가 힘들다”고 고민했다.


그렇다면 홍상수에게 영화는 무엇일까. ‘밤과 낮’에 나온 대사를 그대로 홍 감독에게 던져봤다.

“이미 하고 있는데 내가 정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언어적으로 유창하게 포장하고 싶지도 않고. 인생이 뭐냐고 묻는 것과 같다.

사실 난 더럽게 못 만들지 않나.(웃음)”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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