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을 보고
<배리 린든>은 큐브릭의 영화이니 제목은 들어보았고 언젠가는 한 번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뿐 별 기대를 안 했다. 그 영화에 대한 언급을 나는 거의 듣지 못했고 다만 큐브릭이 그 영화에서 촛불 만으로 조명하기 위해 나사에서 사용하는 렌즈를 특별 주문제작 했다는 이야기만 머리 속에 남아있었다. 포스터의 이미지만으로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제목인 ‘배리 린든’은 사람이름이고 이 영화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아마도 빅토리아 시대인 듯- 이었다. 배리 린든은 어찌하여 배리 린든이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 시작은 배리라는 이름과 애드먼드라는 성을 가진 시골뜨기 청년이 사촌누나를 좋아하면서 결투에 휘말리고 사기극에 속아 유랑 생활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하게 전개된다. 3시간이 넘고 중간 휴식시간(intermission)까지 갖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화면에서 전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의 독특한 상황 전개와 위트 있게 처리한 스토리의 전환점은 역시 큐브릭이구나 했다. 이를테면 배리가 지겨워진 군대를 탈출하게 되는 계기로 만든 것은 연락병이 강에서 목욕을 하느라 옷을 벗어 놓은 것이다. 배리가 그의 옷을 훔쳐 입고 연락병을 가장해 국경을 넘는 것은 평범한 전개일 것이다. 그러나 큐브릭에게 유쾌하게 뒤통수를 맞게 되는 건 연락병이 같이 목욕하는 그의 애인이 남자라는 사실이다. 이야기 전개의 아이디어가 모두 스탠리 큐브릭의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큐브릭이 유능한 시나리오 작가들과 같이 작업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영화에서의 조명은 철저히 자연적인 조명을 사용한 것인데 낮에는 일광을 썼고 밤에는 촛불을 썼다. 같은 일광을 사용하는 데도 어떤 영화는 아무런 감흥이 없고 이런 영화는 찬탄을 자아낸다. 영국의 풍광이 안정감 있는 구도 속에서 아름답게 드러난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들어 있는 작은 인간의 모습이 줌 렌즈를 통해 완연히 부각된다. 마틴 스콜세지는 큐브릭이 시대극에서 줌 렌즈를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나중에 나는 큐브릭의 영화와 그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스콜세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반복적인 줌 렌즈의 사용은 하나의 스타일을 이룬다. 그것이 그렇게 눈에 띄는 것은 내가 보기에 줌의 배율이 흔히 볼 수 없을 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큐브릭은 어릴 때부터 사진을 찍었고 초기작 에서는 그가 직접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연출가이지만 촬영감독 못지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기술적으로 그는 완벽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영화감독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기술적인 부분에서 완벽하게 컨트롤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화감독은 자신이 직접 촬영한다는 태도로 촬영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영화제작시스템의 각 부분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감독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영화가 꼭 영화감독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스타일을 갖기를 원하는 감독에 한해서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그 시대에 맞는 조명과 의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의상은 화려하지만 가라 앉아있으며 고급스러우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많은 돈이 들어갔겠지만 돈 만 있다고 나오는 의상은 아닌 것 같다. 돈이 적게 들면서도 그 영화에 맞는 의상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상에 많은 신경을 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많이 연구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의상 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왕도가 아닐까. 이 영화에서는 의상 디자이너의 정성과 큐브릭의 완벽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극의 초반부에 나오는 식사 장면에서의 조명은 인상적인데 이 장면은 코폴라의 <지옥의 목시록> 리덕스에 나오는 프랑스인 농장에서의 식사 장면과 비교가 되었다. 그 영화에서는 지는 해가 가지고 있는 묵직하게 붉은 열기가 창을 통해 들어와 사람들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다. 이 황혼 빛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스러져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뜨고 프랑스인 미망인과 마틴 쉰만 남은 식당에 어두움이 가라앉는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조명이 변하는 것이 보인다. 그것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이입시키고 있다. <배리 린든>에서는 저택의 거대한 창을 통해 일광이 들이비치고 어두운 부분들이 분위기를 더한다. 보조조명은 사용하지 않았다. 매우 명쾌한 느낌을 주는 장면으로 매우 객관적인 느낌을 준다. 큐브릭은 그 당시의 그림을 참고로 했고 그것에 가장 가깝도록 영상을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쉬지 않고 음악이 흐른다. 모두 클래식인데 음악이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영상과 그 속의 인물과 그의 이야기를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역시나 집요한 음악의 연출이다. 감정이입을 하게 하지 않고서도 –그것이 드라마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의 흥미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영화이다. 배리 역을 맡은 배우는 ‘러브스토리’의 남자 주인공인데 그가 주인공이면서도 그에게 특별한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인물과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것이 큐브릭식의 코미디다. 배리 린든이 어떻게 린든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는가. 그것이 이 영화의 2부에서 보여진다. 배리는 우여곡절 끝에 도박사와 한패가 되고 도박장에서 린든이라는 여자귀족을 만난다. 린든과 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장면을 처리한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도박장을 나온 린든이 달빛이 내려 비치는 저택의 입구에서 뒤를 의식하며 먼 곳을 응시한다. 배리가 끌린 듯이 따라 나온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해피앤드’에 쓰여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이 고조되어 나온다. 대사는 한마디도 없다. 다만 달빛과 음악이 분위기를 더하여 두 남녀의 이끌림을 보여준다. 매우 연출하기 어려운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남녀가 만나 가까워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과 그럴듯한 장치를 필요로 하는가 말이다. 여기는 간단 명료하다. 하지만 서투르게 흉내 내다가는 빈축을 살만한 장면이다. 이 미모의 여자 귀족은 중풍에 걸린 남편과 어린 아들이 있는 부유한데다가 젊은 여인이다. 배리는 신분상승을 위해 린든과 결혼하고 그의 성을 따라 배리 린든이 된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불행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다. 그의 욕망이 불행을 불러오는 과정이 냉정하게 보여진다. 여기서부터 큐브릭의 인생을 보는 시각이 확실히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구성은 처음 배리가 마을을 떠나 기구한 삶은 시작하게 되는 것과 중간에 도박을 하며 승승장구하는 것과 마지막에 다리 한 쪽을 잃고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모두 결투가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대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철학적이며 윤리적이라 말해도 별 무리가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세계가 매우 새롭고 일탈적이며 자유분방한 듯 보여도 궁극으로 지향하는 것은 인간적 윤리와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라는 것은 전방위적이다. 영상과 몽타주만으로 이루어 지는 예술은 아닌 것이다. 영상과 몽타주는 철학을 필요로 하며 조형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영화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철학과 예술적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바탕이 없으면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더라도 반짝이고 사라질 뿐 오래 남지 않는다. 큐브릭의 영화는 오래 남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촛불만으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밤에는 촛불을 사용했을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시대극을 찍는다면 우선 촛불을 주 광원으로 설정을 하고 그 효과를 더하는 조명들을 더 사용한다. 조명이 부족해 노출부족으로 찍히는 것을 막기 위해다. 그것은 속임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는 이미지의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큐브릭은 어떻게 하였는가. 나는 촛불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장면이 촛불만으로 찍은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촛불이 흔들리면 그 인물들에게 비친 불빛도 흔들려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사에서 사용하는 빠른 렌즈를 가지고 촛불만으로 찍었다는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 사실을 떠나서 그렇게 명쾌하고 아름다운 시대극의 밤 실내 신(scene)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는 명료한 컨셉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시종일관 관철시켰다.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현장에서의 작업은 머리 속의 생각과는 달라서 그러한 객관성과 결단력은 말처럼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코폴라도 지옥의 묵시록을 찍으면서 긴 촬영기간과 수많은 악재들로 인해 회의와 정신적 공황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 얘기에 인간적인 공감을 느낀다. ‘배리 린든’이 완성되는 데에도 몇 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