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좋은 글 스크랩 2007. 9. 14. 11:04
웃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지적인 희열 때문일 수도 있으며 간지럼에 대한 반사적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사회적으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단죄의 측면입니다.

이런 폭력적인 웃음이 코미디에 이용되는 빈도는 여전히 높습니다. [남자 셋 여자 셋]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들이 캐릭터 한 명을 바보로 만들어 단죄하는 스토리에 할애되었나요. 보다보면 소름이 쫙 끼칩니다.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캐리처럼 돼지피를 뒤집어쓰고 주변 사람들을 초능력으로 날려버릴 것만 같아요. 하긴 그게 논리적 귀결일지도 모르죠.

이런 웃음은 훌륭한 코미디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진짜 유머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집단과 형식에 대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위대한 코미디 영화 주인공들은 언제나 집단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길을 갔습니다. 유머를 입체화시키는 방법도 그 길밖에 없습니다. (99/06/30)

DJUNA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은 분별 있고 체념 섞인 쾌활함을 가지고 삶의 여러 어려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비웃는 것이다 --그것도 울고 싶은 순간에."

심슨 가족]의 유머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구체적 타자인 특정한 계층, 국민, 집단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입니다.

[심슨 가족]이 어필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야기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코미디들이 다 그렇듯이, [심슨 가족]은 우리 자신의 천박함, 약함을 돌아보고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며 웃습니다. 그토록 어리석고 추한 그들이 10년 넘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요? 그들이 비웃음만의 대상이라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왜 우리는 [순풍 산부인과]에서 미달이 아빠의 유치한 짓을 보고 웃을까요? 그가 그냥 유치한 사람일 뿐이라면 그런 에피소드들은 짜증만 유발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의 유치한 짓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때 진짜로 웃습니다. 그가 그냥 유치한 타자일 뿐이라면 우린 그를 경멸하고 무시할 겁니다.

유머는 언제나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유머리스트가 되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죠. 진짜 유머리스트는 자신도 찔릴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고 또 찔러야 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웃음의 대상 바로 뒤에 서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맘에 드는 메시지만 잽싸게 입양하려는 비평가들은 그들 자신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에요. 그렇다면 그들은 늘 이류 관객일 수밖에 없지요. (99/06/30)

DJUNA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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