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건물 입구에서 계단 열다섯 칸을 내려가자 깜깜한 지하방 일곱 개가 나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고시원. 7㎡(약 2평) 남짓한 B06호에 ‘여의도 사건’ 피의자 김 아무개씨(30)가 살았다. 손바닥만 한 창문 두 개가 복도를 향해 나 있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중계기가 없어서인지, S통신사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3월부터 보증금 50만원, 월세 25만원을 주고 이곳에서 지냈다. 화장실조차 없는 방 안에는 고시원에서 제공한 낡은 매트리스와 책상, 냉장고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숟가락, 샴푸, 부탄가스 같은 생활용품이 책상 위에 있었다. 책장에는 <돈 걱정 없는 노후 30년>과 같은 재테크 서적이 있었다. 대출상품 영업을 할 때 쓰인 것으로 보이는 ‘○○대학교 동창회 명부’도 보였다.

그가 사용한 오래된 냉장고에는 ‘△△과도 7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고시원으로 올라오는 길목에 위치한 ㅋ마트에서 과도 5개를 사 모은 것이었다. 김씨는 경찰 진술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옛 직장 동료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세 달 전부터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두 달 전부터는 (동료들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마다 과도를 사 모았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그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숫돌에 칼을 갈았다고 전했다. 


   
ⓒ뉴시스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 김 아무개씨(30)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난 때는 지난 8월22일. 김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ㅎ신용평가정보 건물 앞에서 옛 동료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팀장 김 아무개씨(32)와 조 아무개씨(30)가 나오자 이들을 뒤따라가 수차례 찔렀다. 도주하면서 행인 안 아무개씨(32)와 김 아무개씨(31)에게도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피의자 김씨는 “행인들이 나를 쫓아오는 것처럼 느꼈다”라고 말했다.

범행 당시, 그의 주머니에는 현금 200원과 4000원이 충전된 교통카드가 들어 있었다. 생활비 등으로 진 카드빚은 4000만원에 이르렀다. 지난 3월 퇴직한 이후 몇 차례 취업을 시도했지만 신용불량자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노트북을 팔기도 했다.

김씨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ㅈ은행 대출상품 위탁판매업 동료 박 아무개씨는 그를 ‘밥을 무척 잘 먹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따금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밥 두세 공기를 매우 허겁지겁 먹어 며칠 굶은 사람 같았다고 한다. 그는 “김씨가 객지 생활을 오래한 탓인지, 그를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혼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4년 전부터는 가족마저 연락이 끊겼다. 어머니와 마지막 통화를 한 지 1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4개월여 전, 그는 동료 박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고 했다. “영업직이 맞지 않아 다른 데 취업을 할거다. 벌써 면접을 봤다. 4대 보험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김씨는 이후 어디에도 입사하지 못했다.

김씨는 서울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후 지방의 한 4년제 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기간은 짧았다. 이듬해 중퇴한 뒤 군에 입대했다. 2005년 제대 후 곧바로 시작한 그의 첫 직장은 ㄱ신용정보였다. SK텔레콤 연체요금을 받아내는 전화 상담 업무였다. 2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직장 생활은 계약 기간 만료와 함께 끝났다. ㅅ보증보험으로 직장을 옮겼다. 연체 채권 상담 업무였다. 이 역시 2년 계약 기간이 끝나자 그만둬야 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실적 게시

이번 사건의 표적이 된 세 번째 직장 ㅎ신용평가정보에서 김씨는 또 SK텔레콤 미납 요금을 상담하는 일을 맡았다. 평소 가깝게 지낸 지인이자 당시 팀장으로 일하던 이 아무개씨의 소개로 입사했다. 2009년 10월, SK텔레콤 미납 업무가 ㅎ신용평가정보에 위탁되자 회사는 팀을 꾸려 김씨와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 12명을 뽑았다. 한 달여 뒤 직원을 추가로 채용해 30∼40명이 함께 근무했다.

ㅎ신용평가정보의 한 동료는 “미납 상담 업무에 경력이 있었던 데다 상담업계에서 보기 드문 남성이라는 점 때문에 김씨가 입사하면서 꿈을 크게 가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실적을 인정받아 입사 3개월 만에 부팀장으로 승진했다.

급여는 기본급 100여만 원에 추심 건당 받는 수수료를 더하는 것으로 책정됐다. 개인사업자로서 회사가 위임 계약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퇴근 직전에는 1등부터 꼴찌까지 실적 등수가 게시판에 붙여졌다. 팀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 간 실적 경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앞서 말한 동료는 “실적이 안 좋은 직원은 자칫 다른 그룹원에게 피해를 줄까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일을 시작한 수개월 동안 평균 이상의 실적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다달이 150만∼200만원을 받았지만 그 기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적은 떨어졌다. 곧이어 실적이 안 좋으면 부팀장에서 물러나는 관행에 따라 김씨도 수개월 만에 팀원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퇴사 직전, 동료 직원 30여 명에게 ‘잘 지내라. 그동안 고마웠다’며 온라인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김씨와 함께 일한 한 퇴직자는 “동료들 사이에 실적 때문에 따돌리는 경우는 없었다. 부팀장이라는 자리를 스스로 부담스러워했고, 실적 때문에 눈치를 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정받고 싶었던 꿈이 좌절된 데 따른 상실감이 컸던 것 아니냐는 말이다.


   
ⓒ시사IN 이명익
김씨가 최근까지 근무한 ㅈ은행 대출상품 위탁판매팀에 보낸 이력서. 비정규직을 전전한 경력을 볼 수 있다.


경찰에서 김씨는 피해자 김씨가 “팀장인데도 자신의 업무를 미뤄 화가 났다”라고 말했다. 동기인 피해자 조씨에 대해서는 “험담했다고 특정할 수 없지만 나쁜 말을 한 직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복수의 회사 관계자들은 “입사 초기에는 조씨가 김씨의 부하 직원이었으나 조씨가 팀장으로 승진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것 아니냐”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ㅎ신용평가정보를 범죄 대상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김씨는 “이곳을 그만두고 난 뒤 살기가 힘들어졌다”라고 진술했다. 실제로 그는 퇴사 이후 생활고에 시달렸다. 2011년 3월, 퇴사 5개월 만에 ㅈ은행 대출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기본급 없이 실적에 따라 급여가 지급됐다. 그러나 영업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씨는 1년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퇴사하기 4개월 전부터는 회사에 아예 출근하지 않았다.

그의 직장동료 박씨는 “월급 200만원을 받기 위해서는 매달 대출상품 1억원가량의 판매를 성사시켜야 한다. 다달이 300만원을 받는 사람은 업계에서 10%가 안 된다. 업계 종사자 절반은 실적이 0%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김씨도 그 절반에 속했다. 대출상품을 팔아야 했던 그는 오히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근근이 생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지난 1월, 김씨는 자신의 블로그 제목을 ‘ㅈ은행 김OO입니다. 직장인 신용대출’에서 ‘The Pursuit of Happyness(행복을 찾아서)’로 바꿔 달았다. 블로그에 게시된 글은 없었다. 그가 사건을 저지르기 직전에 등록한 카카오톡 자기소개 문구는 ‘마지막은 악역으로…’였다.

그가 최근까지 근무한 ㅈ은행 대출상품 위탁판매팀에 보낸 입사지원서를 보면, ‘서로를 생각하고 위해주는, 웃음을 잃지 않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남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고민을 잘 상담하는 편이다’ ‘사람 속에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김씨는 행복과 즐거움을 찾지 못한 채 악역으로 치닫기를 선택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