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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대거 유입 허용한 노동당 단죄하려 했다”
최민영·심혜리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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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브레이비크 첫 공판 진술
ㆍ“두 개의 소조직 더 있다”
ㆍ행위는 인정, 무죄 주장

최소 76명의 사망자를 낸 노르웨이 ‘대학살’의 용의자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32)는 25일 오슬로 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 ‘문화적 마르크시즘’으로부터 노르웨이와 서유럽 사회를 구하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브레이비크는 또 “우리 조직 안에는 두 개의 다른 소조직(cell)이 있다”고 말해 경찰이 공범여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오슬로 법원 킴 헤게르 판사는 구속 적부심 재판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브레이비크가 “노르웨이에 무슬림을 대거 유입하는 노동당에 죄가 있다”며 “노동당이 반역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브레이비크는 또 “실패한 노르웨이 노동당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노동당에 최대한의 인력 손실을 입히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헤게르 판사는 밝혔다. 

법원 떠나는 용의자 최소 76명의 사망자를 낸 노르웨이 테러의 용의자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왼쪽)가 25일 오슬로 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을 마친 뒤 경찰 차량을 타고 법원을 떠나고 있다. 오슬로 | AFP연합뉴스


그러나 브레이비크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죽이진 않으려 했다”고 밝혔으며, 자신의 행위는 시인했지만 유죄를 인정하진 않았다고 헤게르 판사는 덧붙였다. 

오슬로 법원은 이 같은 브레이비크의 테러에 대해 테러행위와 사회전복, 사회 공포 조장 등의 혐의로 8월22일까지 8주간의 구금을 결정했다. 8주간의 구금 중 4주는 “완전한 격리를 요한다”고 밝혔다. 

브레이비크는 이날 공판에 앞서 자신이 왜 그 같은 테러를 저질렀는지를 설명하고 싶다며 변호사를 통해 공개 공판을 요청했지만 법원에 의해 거부됐다. 제복을 입고 싶다던 요청도 거절됐다고 법원은 밝혔다.

법원은 정확한 날짜를 언급하지 않은 채 경찰 조사가 끝난 뒤 본재판이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결정하긴 이르다”며 말을 아꼈다. 법원은 다만 “보통 노르웨이의 재판은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관례”라면서 “이 사건이 대중의 관심이 많은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브레이비크는 1500쪽짜리 성명서 ‘2083:유럽 독립선언’에서 자신의 삶과 반이민주의, 테러준비 내용 등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슬픔과 두려움 한 여성과 소녀들이 25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노르웨이 우퇴위아섬 건너편 캠프장 방파제 인근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1분간의 묵념 도중 서로 부둥켜안은 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퇴위아 | AP연합뉴스

그는 성명서에서 우파적 시각을 갖게 된 계기로 12살 때 일어난 1차 걸프전쟁(1991)을 꼽았다. 한 무슬림 친구가 미군의 미사일 피격 소식에 환호하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노르웨이와 서구 문화에 빠져들었다. 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알바니아계 무슬림을 인종청소한 세르비아를 폭격하는 것을 보고 “이번 테러 규모의 힌트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유럽의 이슬람화는 평화적 수단으로 막을 수 없다”고 적었다. 그는 스스로 보수기독교인이자 애국자, 국수주의자라고 칭했으나 네오나치는 “성미 급하고 혜택에서 소외된 인종차별적 스킨헤드일 뿐”이라서, 보통의 노르웨이인은 “유약해빠졌다”는 이유에서 경멸했다. 

그는 또 성명서에 AK-47 소총을 사러 체코 프라하로 갈 때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 은퇴자들이 많이 모는 ‘현대차’를 고른 것, 무기류와 폭탄제조에 사용된 6t의 화학비료 구입 방법,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완전 삭제 방법, 이웃에게 의심받지 않고 잘 지내는 요령 등도 자세히 언급했다. 

그러나 그가 쓴 성명서는 미국의 반이슬람주의 블로거들이 쓴 글의 내용을 대거 차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특히 일부 내용은 78~86년 기술발전의 폐해를 지적하며 연쇄 소포폭탄 테러를 일으킨 ‘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의 성명서 단어만 바꾼 것이다. ‘좌익사상’이 ‘다문화주의’로, ‘현대사회’가 ‘서유럽’으로 바뀐 수준이다. 

노르웨이 경찰은 이날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숫자를 93명에서 76명으로 정정했다. 차량 폭탄 테러로는 8명, 총기난사로는 6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한 실종자를 계속 수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2&aid=0002152440


브레이비크, 연쇄 테러 ‘유나바머’ 흉내

ㆍ시시콜콜 범행과정 기록도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브레이비크는 1500쪽짜리 성명서 ‘2083:유럽 독립선언’에서 자신의 삶과 반이민주의, 테러준비 내용 등을 기괴하리만치 상세하게 묘사했다. 창녀를 만나고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적어놨다. 어린 시절에 대해 그는 “책임 있는 사람들 곁에서 우수한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외교관 아버지와 간호사이던 어머니는 그가 1살 때 이혼했고 이후 어머니가 그를 양육했다. 브레이비크는 15살 때까지 아버지를 찾아 프랑스를 정기적으로 방문했으나 이후 연락이 끊겼다. 은퇴한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아들에 대해 “평범했지만 은둔적 성향이 있었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노르웨이 언론 VG에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성명서에서 우파적 시각을 갖게 된 계기로 12살 때 일어난 1차 걸프전쟁(1991)을 꼽았다. 한 무슬림 친구가 미군의 미사일 피격 소식에 환호하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노르웨이와 서구 문화에 열렬히 빠져들었다. 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알바니아계 무슬림을 인종청소한 세르비아를 폭격하는 것을 보고 “이번 테러 규모의 힌트를 얻었다”고도 밝혔다. 스스로 보수기독교인이자 애국자, 국수주의자라고 칭했다. 네오나치는 “성미 급하고 혜택에서 소외된 인종차별적 스킨헤드일 뿐”이라서, 보통의 노르웨이인은 “유약해빠졌다”는 이유에서 경멸했다. 그는 “유럽의 이슬람화는 평화적 수단으로 막을 수 없다”고도 적었다. 

성명서는 범행의 매뉴얼이기도 했다. AK-47 소총을 사러 체코 프라하로 갈 때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 은퇴자들이 많이 모는 ‘현대차’를 고른 것까지 기록했다. 무기류와 폭탄제조에 사용된 6t의 화학비료 구입 방법,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완전 삭제 방법 등과 함께 이웃에게 의심받지 않고 잘 지내는 요령도 자세히 썼다. 시간이 없어서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얘기, 고급 창녀와 잠자리를 하기 위해 2000유로를 모은 얘기도 적혀 있다. 

그가 자신의 사생활까지 성명서에 적은 목적은 무엇일까. 대량학살범 전문가인 잭 르빈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그는 악당보다는 희생자처럼 보이길 원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처럼 약점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얘기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방대한 분량의 성명서는 일부 ‘짜깁기’의 결과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성명서가 미국의 반이슬람주의 블로거들이 쓴 글의 내용을 대거 차용했다고 전했다. 또 일부는 1978~86년 기술발전의 폐해를 지적하며 연쇄 소포폭탄 테러를 일으킨 ‘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의 성명서 단어만 바꾼 것이다. ‘좌익사상’이 ‘다문화주의’로, ‘현대사회’가 ‘서유럽’으로 바뀐 수준이다. 유나바머 수사를 감독했던 전직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은 “두 사람은 모두 분노를 지닌 외톨이였고 자아 의존적이었다. 이들과 같은 외톨이형 범죄자는 다른 테러범보다 발견하기도 어렵고, 범행을 막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주변인들은 그에게서 특별한 문제를 감지하지 못했다. 범행을 계획한 그가 올해 초 폭탄을 만들 비료를 구입하려 농지를 사들인 헤드마르크 지방 레나의 시골 주민들은 그를 ‘도시 남자’로 기억했다. 컴퓨터 가방을 메고 잘 차려입고 다녀서 농부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99년 그가 가입했던 우파 성향의 진보당 관계자는 “그는 몇 번 모임에 나오다가 당을 탈퇴했다. 매우 낯을 가렸고, 항상 넥타이를 맸으며 정신이상자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범행 전까지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영위했다”고 전했다. 오슬로에 거주 중인 브레이비크의 모친은 아들의 범행을 사전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은 유사범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브레이비크가 영국의 대표적 극우단체 ‘영국수호동맹(EDL)’과 수차례 접촉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252203475&code=970205&cr=naver

유럽·러시아
테러리스트에 비친 ‘한국의 단일문화’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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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테러 용의자인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32)는 ‘2083:유럽 독립선언’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한국을 ‘단일문화’의 롤 모델이라고 밝혔다. 

브레이비크는 온라인에 실은 1500여쪽의 선언문에서 유럽의 단일문화를 이루기 위한 롤 모델로 한국과 일본을 꼽았다. 12~14세기 성전기사단에서 영감을 얻어 군사조직을 만들고, 그에 따라 2083년까지 유럽 집권을 이루겠다는 계획에서 그는 ‘사회적 목표’를 “단일문화이지만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진보적인 사회인 일본과 한국 모델”이라고 적시했다.

그는 ‘한국과 다문화’라는 제목의 단락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종적으로 단일화된 국가 중 하나”라며 “일본, 대만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다문화주의를 거부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대부분의 한국인이 국적을 피와 역사를 공유한 단일 인종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많은 한국인은 캐나다와 미국과 같은 다인종 국가를 이상하게 여긴다”고 밝혔다.

브레이비크는 일본, 한국, 대만을 다문화주의를 채용하지 않은 현대 국가로 분류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민자의 유입 없이 경제 발전을 이룬 일본과 한국은 이민과 다문화의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 한국 등에서 이슬람의 존재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산업 경쟁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단일문화에다 경제가 발전한 한국과 일본의 경우 학교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제3세계에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전문가를 양성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방식과 같이 고등교육을 받은 외국인을 들여오는 방식은 핵심적인 학교개혁을 미루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면서 “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해야 하며 이는 일본이나 한국의 원칙을 모방하는 것을 포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브레이비크는 또 한국, 일본, 대만을 오늘날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꼽으면서 그 이유로 단일문화를 들었다. 그는 또 세 나라에서는 범죄가 거의 없고 성폭행이나 유린 행위, 강도 또는 살인의 위협 없이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적었다. 그는 “세 나라는 가부장제 문화와 가족 가치가 강하다”며 “오늘날 보수주의 운동을 위한 우리의 롤 모델”이라고 밝혔다.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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