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영화 2012. 7. 9. 13:58

<피로사회>가 지적한 것처럼, 바야흐로 우울증의 시대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유의미한 사망원인은 암이 아닌 자살이다.


<멜랑콜리아>는 신이 없는 지금,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기반이 얼마나 허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저스틴과 클레어, 그리고 존. 그리고 순수하기에 모두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어린 레오.


결혼식에 닥친 저스틴은 언뜻 활발하고 당차고 행복한 현대 여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가 감당하고 있던 엄청난 스트레스가 하필 그날 폭발한다. 결혼식을 몇 번이고 중단해야 할 만큼 그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서 혼자서 우울과 맞서고 싶어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 이상 주어지지 못 하면 미치기 직전까지 가는 미란과 비슷하다. 그만큼 그녀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연기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냉소적인 엄마, 오로지 쾌락에만 탐닉하는 방탕한 아빠, 아둔하고 눈치 없어 보이는 신랑, 돈에 눈먼 탐욕스런 그녀의 보스까지 모두 그녀를 압박하기만 할 뿐이다.


1부에서 저스틴이 일 중독자의 개인적인 고독과 우울을 결혼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보여준다면,

2부에서는 클레어가 그녀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없다면 얼마나 나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존이 자신의 재력과 권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미래가 도래했을 때 얼마나 나약한지도 우습게 드러난다.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밖에 없는 것인지가 궁금한 클레어.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 딴게 뭐가 궁금한가 싶지만, 그녀는 외롭다. 존재의 고독을 관계에 투사하는 클레어도, 굳건해 보였지만 사실을 이토록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멜랑콜리아가 다가오며 지구의 종말이 눈앞에 닥치자 클레어가 원하는 것은 모두가 모여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녀가 얼마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세 명의 인물 모두, 현대 사회에서 의미 지어지는 어떤 가치들에 자신을 투사했던 나약한 인물들에 불과했다. 저스틴은 일, 클레어는 관계, 존은 부와 권력. 종말이 눈앞에 닥치자 가장 초연한 것은 저스틴인데, 이는 그녀의 고독과 우울이 개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말 따위는 그녀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 죽음과 고독을 비롯한 모든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종말은 죽음, 우울의 끝과 다르지 않다.


지구를 집어삼킬 멜랑콜리아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며 다가오는 마지막 컷이 끝나면 우리들은 자문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정말 흔들리지 않는 가치라는 게 존재하는가?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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