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의 현실.jpg

필명숨김
2012.01.25 09:00:48

지난 19일 경기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1년차 연수생들이 강의실앞 벤치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연수생들의 가슴에 최근 학업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동기생을 추도하는 검정 리본이 달려 있다. /정지윤기자

사법시험 합격자 연 1,000여명 시대가 열린 지 5년. ‘사시 합격=판·검사’라는 등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변의 선망과 찬사를 즐길 여유는 없다. 300등내 임관이란 좁은 문을 뚫기 위한 무한경쟁만 있을 뿐. 시험 벌레로 내몰리는 사법연수원생의 실태와 연수원 교육의 개선 방향을 살펴본다.

사법연수생 1년차 이모씨(32). 보름 전인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자신의 아파트 10층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2학기 시험을 한 주 앞두고서다. 고교 때는 전국 수석도 했던 그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4년 공부 끝에 모두가 선망하는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정작 마지막 관문에서 그는 손을 놓아버렸다.

“같은 내용을 대여섯번 읽어도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땀이 나서 기록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씨가 평소 가족들에게 남긴 얘기다.

사법연수원은 전쟁터다.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를 맞으면서부터다. 일가 친척이나 친구들은 사시에 합격했다면 당연히 판·검사 되는 줄 알고 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연수원 2년간의 성적에 따라 180등까지 판사, 300등까지 검사가 된다. 예전에는 임관이 안돼도 변호사로 개업하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이 보장됐다. 요즘엔 ‘백수 변호사’가 흔한 풍경이다. 300위 안에 들기 위한 경쟁이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3 수험생은 저리 가라다. 고3들은 그나마 친구들과 동병상련의 정이라도 나눈다. 연수원은 아니다. 바로 눈 앞의 동기생들에 앞서야 ‘벼슬’을 할 수 있다.

사법연수생은 아침 6~7시 기상, 오전 10시~오후 5시30분 수업, 저녁 식사후 도서관행이라는 꽉 짜여진 일과를 되풀이한다. 대부분이 새벽 2~3시까지 책상에 붙어 있다.

“사시는 예선이고 연수원이 본선”이란 자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중간에라도 끼기 위해서는 고시 공부할 때의 2~3배는 해야 한다. 연수생들은 ‘정상적으로 공부하면 하위권’ ‘열심히 하면 중위권’이라고 한다. 현재 연수원 2년차(36기) 1등은 여성. 그녀는 매일 새벽 5시까지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거의 안자는 셈이다. 1주일에 한번 일요일에 시체처럼 몰아서 잔다. 이렇게 독종, 별종처럼 해야 상위권에 낄 수 있다.

‘독종’들끼리의 경쟁은 더 치열하다. 검사보다는 판사, 지방보다는 서울에 가기 위해서다. 군미필 남자들은 군법무관을 갈지, 공익법무관을 갈지도 경쟁이다. 판·검사에 임용되려면 군법무관 출신이 한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때는 1년차 1학기. 왕년에 전교 1등 안해본 적이 없고, 사시 합격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에 꽉 차 있는 1,000명이 스타트라인에 함께 서 있는 때다. 비슷한 실력자들을 한 곳에 가둬놓고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한계에 다다른다.

1년차 박모씨(30·여)는 “1학기 평가가 끝나고 주임교수에게 ‘넌 왜 그렇게 처지느냐’는 얘길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충격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 공부하는 시간에 나만 뒤처질까봐 불안해서 아프지도 못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만학도’보다는 ‘소년 등과생’, 남자보다는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학습 적응에서 한참 앞서 나간다. ‘연수생 70%는 우울증 환자일 것’이라는 믿거나말거나식 얘기도 공공연하다.

연수생들의 경쟁 부담감은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최근 상을 당한 한 연수생은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가족들이 기말고사를 치르는 아들의 처지를 생각해 연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발인 전날에야 영정 앞에 회한의 절을 올릴 수 있었다.

고시촌 생활부터 경쟁에 시달려온 연수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만성위염 같은 잔병을 앓고 있다. 비타민은 기본이고 몸에 좋다는 보약 한두 종류는 누구나 복용한다. 구 소련 KGB가 개발했다는 각성제가 잠을 쫓는데 효과가 있어 누구누구가 먹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회식은 기피대상 1호다. 한 자리에 앉아봤자 이런저런 핑계로 술을 안 마시는 동료가 있는데 나만 마시면 손해라는 인식 때문이다.

1년차 김모씨(27)는 “교수가 바뀔 때마다 자기 소개서를 쓰는데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다’고 쓴 동료들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그는 “연수생 사이 우스갯소리 중 법조인에게 가장 중한 처벌은 ‘사법연수원 1년형에 처한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김동은·강병한·임현주기자〉

[사법연수원 25時] 법조인생 걸린 평가 ‘2년 고행’

사법연수원은 국내 유일의 법조인 양성기관이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교육시킨다. 대법원 산하조직으로 1971년 문을 열었다. 서울 서초동에서 2001년 말 일산으로 옮겨왔다.

사법연수원은 2년 과정으로 총 4학기로 운용된다. 3개 학기는 연수원 내에서 강의와 평가가 이뤄지고, 2년차 상반기(3번째 학기) 때에는 ‘검사 시보’ 등의 이름으로 법원, 검찰 등으로 실무수습을 나간다.

연수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석차를 내지 않는다. 본인의 학점만 통보해 준다. 그러나 자신의 성적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연수생 성적을 100명 단위로 끊어서 200등은 평점이 몇 점, 500등은 얼마인지 게시판에 공고해준다. 내 성적이 3.5점인데 100등의 평점이 3.7, 200등이 3.3점이라면 나는 150등 정도이겠구나 하는 식이다.

연수생 숫자가 많다보니 연수원 생활은 반(班)·조(組) 위주로 운용된다. 한 반 60여명, 한 조에 20여명씩이다. 동료 연수생들 간 분위기는 1990년대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경 쟁이 치열해지면서 다른 반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반원과도 말 안하고 지내는 연수생이 속출할 정도다. 연수원 반 배정은 성적, 성별, 출신학교 등을 고려해 연수원측에서 정한다. 각 조별로 지도교수가 있다. 현직 중견 판·검사들이다.

연수원에는 기숙사가 있다. 정원은 400명이다. 연수생이 2,000여명이기 때문에 모두 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는 없다. 가까운 일산에 집이 있거나 기혼자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연수생 대부분은 인근 오피스텔에 방을 구해 지낸다. 연수원은 ‘토털 아날로그 시스템’이다. 뭐든지 손으로 써야 한다. 숙제도, 리포트도, 필기도, 시험도 다 수(手)작업이다.

〈이인숙기자 sook97@kyunghyang.com

[사법연수원 25時] 한과목 8시간 ‘공포의 시험’ 두차례

사법연수원 수료의 가장 큰 고비는 공포의 ‘8시간 시험’이다. 2학기(1년차 2번째 학기)와 4학기에 치러진다. 민사 판결문, 형사 판결문, 검찰 공소장 작성 시험 등이다. 과목당 8시간씩 본다.

시험은 얇은 책 한권 분량의 사건 기록을 나눠주면서 시작된다. 연수원 교수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사건이 시험 문제다. 사건은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다. 10여명의 등장인물이 얽히고 설켜 있다. 연수생들은 ‘신 시티’(sin city·온갖 추잡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범죄 도시를 그린 소설·영화 제목)라고 부른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적용 죄목만 10가지를 훌쩍 넘는다.

올 초 연수원을 마친 서울중앙지법의 한 예비판사는 “기록을 다 읽는 데만 꼬박 3~4시간이 걸린다. 중간에 메모하고 8절지에 개요를 그려가며 사건을 정리한다. 아차 실수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시험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식사 시간은 없다. 12시가 되면 연수원측에서 “건강을 위해 점심을 꼭 챙겨 먹으라”는 안내방송을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아예 점심을 굶거나, 한 손으로 기록을 넘기며 미리 준비해온 연양갱·바나나·방울토마토·김밥 등을 집어 먹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한 별도 휴식시간도 없다. 한 번에 한 명씩, 교실에 걸린 화장실 열쇠를 들고 번갈아가며 다녀온다. 지정된 화장실 앞에는 공익근무요원이 지켜 서있다.

판결문은 손으로 직접 쓴다. 보통 A4용지 20~30페이지를 써야 한다. 채점은 감점 방식.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잘못 찍으면 점수가 깎인다. 판결문 양식에 얼마나 맞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사건 개요가 복잡하고, 꼼꼼한 기록작성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기억력 좋은 나이 어린 여성 연수생의 성적이 좋다. 시간 때문에 판결문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2학기 시험은 10일동안 진행된다. 8시간 시험 다음 날엔 좀 쉬운 시험을 보고, 그 다음날 다시 8시간 마라톤 시험을 보는 식이다.

4학기 시험의 경우 5과목을 하루 걸러 한 과목씩, 총 10일간에 걸쳐 실시된다. 성적 반영은 법원과 검찰이 조금 다르다. 법무부는 마지막 4학기 성적에 2배 가중치를 둔다. ‘8시간 시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연수생들의 심리적·육체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한 예비판사는 “시험이 끝났을 때는 5㎏이 빠지고 거의 탈진 지경이었다”고 술회했다.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

[사법연수원 25時]中. “절반이상 선행학습…3천만원 과외도”

고3 수험생과 사법연수원생은 닮은 꼴이다. 고3에게 국·영·수가 있다면 연수원생에게는 ‘민·형·검’이 있다. 민사재판 실무·형사재판 실무·검찰 실무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수능 과목이 아닌 시간에 고3생들이 자듯, 연수생들 또한 성적 평가와 무관한 특강 시간에는 부족한 잠을 청한다. 이수 학점이 낮은 강의 시간에는 다른 공부를 하는 것도 고3과 똑같다.

“훌륭한 외부 강사를 모셔와 특강을 열어도 연수생들 반 이상은 잔다. 강사에게 민망할 정도다.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 안된다고 얘기하지만 먹혀들지 않는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낸 한 부장판사는 “연수생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매년 수업내용이 똑같은 과목은 연수원 앞 복사집을 찾으면 된다. 진도도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복사집 아저씨가 시간표에 맞춰서 그때그때 예년 숙제와 모범답을 복사해놓는다. 임대차·근저당·매매계약 등의 숙제는 복사집 아저씨 자료를 받아 이름과 액수만 바꿔 내면 끝난다.

초·중·고에 유행하는 ‘선행학습’에 연수원도 예외는 아니다. 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미리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올 연수생들 절반 이상이 선행학습을 받았을 것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달 중순 2차시험 합격자가 발표되자마자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는 당장 4곳의 학원이 사법연수원 예비과정을 개설했다. 25일 교육내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ㅂ학원 관계자는 “사법연수원에서 배우는 것과 똑같다”고 밝혔다. 예비 합격자 시절부터 내년 3월 연수원에 들어갈 때까지 주요 과목을 떼는 식이다.

이런 학원은 한 과목 코스 강의가 60만원선. 효과가 있기로는 연수원 출신 군법무관이 하는 한 회당 30만원짜리 강의가 정평이 나 있다. 연수원 커리큘럼 그대로 한다고 해서 제법 입소문이 퍼져 있다. 몇 과목 제대로 들으면 강의료만 3천만원이 훌쩍 넘는다는 전언이다.

1년차 박모씨(29·여)는 “이런 강의는 돈 있는 애들이 비밀리에 모여서 하는 거라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연수원 교육과정을 미리 실습시켜 줘 효과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1980~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노동법연구회, 인권법학회, 사회보장법학회 등은 연수생들을 유혹하는 스터디그룹이지만 마음뿐,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게 현실이다.

지난 1학기 체육대회 때는 축구시합에서 몇몇 반이 초반에 탈락하자 공부하기 위해 일부러 떨어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다른 반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연수원측은 결국 패자부활전을 만들어 탈락한 반도 계속 시합을 하도록 했다. 1년차 김모씨(28)는 “단 한명이라도 그 시간에 공부를 한다면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쟁 속에서도 동문 챙기기는 계속된다. 요즘엔 외국어고 출신들끼리 은밀히 뭉치는 게 두드러진다. 연수원 교수를 지낸 ㅇ판사는 “외고출신끼리 자기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서로 밀어줘 사시 성적은 별로인데 연수원 성적은 쑥쑥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임현주·강병한기자 kimys@kyunghyang.com

[사법연수원 25時] ‘공부시간 벌기’ 휴학 속출

사법연수원 휴학생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를 연 2001년 20명이던 휴학생은 지난해 46명으로 급증했다.

휴학의 가장 큰 이유는 건강문제. 연수원 관계자는 “살인적인 학습량과 성적 스트레스로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연수생들은 공부 시간을 1년 벌기 위해 휴학한 것이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이다. 모 사립 명문대학을 수석졸업한 한 여학생도 지난해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자 휴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적 끌어올리기를 위한 휴학을 막으려고 연수원측은 갖가지 묘수를 짜내고 있다. 한때 연수원은 복학생에게는 최고 성적을 B+로 제한했다. 판·검사 임관이 가능한 300등 이내 성적을 유지하려는 얌체 휴학을 막기 위해서다. 복학생들 시험은 별도로 채점하는 방식도 시도했다.

그래도 늘어나는 휴학생을 막지 못하자 연수원은 휴학을 하려면 ‘장기간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진단서를 제출토록 하고 휴학 이전에 치른 시험에는 재응시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때문인지 올해는 휴학생이 10월 현재 28명으로 증가세가 조금 주춤해졌다.

아예 연수원 입학을 미루는 입학유예자도 속출하고 있다. 휴학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입학을 1년 미루고 충분한 준비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입학유예자는 2003년 63명(6.95%)에서 2004년 83명(8.23%), 지난해 106명(10.59%)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입학유예자는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대학 3~4학년 재학중 합격한 ‘소년 등과생’이 주종을 이룬다. 이들은 연수원에 먼저 들어간 고교·대학 선배·친구들을 통해 연수원 교육과정을 미리 귀띔받고 1년간 꾸준히 선행학습을 한다.

〈조현철기자 cho1972@kyunghyang.com

[사법연수원 25時]시험 2주전부터 ‘질문중지’

사법연수원 운영의 철칙은 형평성이다. 수업 내용은 물론 진도도 16개반이 똑같다.

학기 초 시간표가 나오면 진도도 ‘○월 ○일 강의는 ○쪽까지’로 일괄 정해진다. 교수 16명이 돌아가면서 수업 준비를 한 뒤 수업 전 다같이 모여 수업내용을 조율한다.

연수원측은 예측가능한 모든 오해와 시비를 없애기 위해 뭐든지 ‘똑같이’ 하고 있다. 연수생들이 1~2점 차를 놓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게 ‘질문중지기간’이다. 시험 전 2주일가량은 모든 강의에서 교수들에게 일절 질문을 할 수 없다. 어느 교수가 시험문제를 출제했는지 알게 되면 그 교수에게 질문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교수가 답변하는 과정에서 다른 반에서는 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되면 그 반 학생들만 시험에 유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시험문제가 출제된 뒤 이뤄지는 마지막 강의는 아예 화상으로 이뤄진다. 교수 1명이 화상중계시스템이 설치된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진행하면 나머지 15개반에 동시 중계되는 방식이다.

드물지만 형평성 시비로 재시험이 치러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지난해 ‘수사절차론’ 과목에선 어느 반에서 감독 교수가 ‘오픈북 테스트’로 잘못 알고 법전을 나눠 준 게 화근이 됐다. 연수원장이 사과문을 내고 담당교수가 사과한 끝에 결국 재시험을 봤다.

〈이인숙기자 sook97@kyunghyang.com

[사법연수원 25時]下. 거세지는 ‘변화’ 요구

26일 경기 일산 사법연수원 도서관에서 연수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다. 도서관 한켠에는 법의 공정한 적용을 의미하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져있다. /정지윤기자

사법연수원 1년차 염모씨(35). 연수생 치고는 늦은 나이다. 염씨는 판·검사 임관에 큰 욕심이 없다. 그에게 연수원 수료는 변호사 자격증을 딴다는 의미 정도다. 연수원 분위기는 다르다. 한 학기가 지나면서 임관을 포기한 연수생도 있지만 아직 70~80%는 임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임관 경쟁에서 벗어나는 연수생은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염씨는 “교수와 동기생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생의 가치는 판·검사 임관으로 판가름나는 게 현실이다. 연수원 전체가 성적 경쟁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누군가 한 학기동안 교수들이 별도로 나눠준 프린트물(부교재)만 쭉 쌓아놓으니 법전 10권 높이로 3줄이 세워지더라는 얘기도 있다. 공부에 쫓기다보니 TV 뉴스나 신문을 멀리하게 되고 시사에 먹통이다. 인성이나 교양은 한가한 이야기다. 시스템 자체가 판박이 법조인을 양산하게끔 짜여져 있는 셈이다.

지금의 사법연수원 교육에 손 볼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성적지상주의, 직역별 서열주의, 판·검사 일변도의 커리큘럼 등 현 연수원 교육과정과 문화에 대해 지적되는 문제점은 한 둘이 아니다. 연수원 이상원 교수는 “연수원 시절엔 지식습득뿐 아니라 각계 각층의 국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인성을 키우라는 것이 연수생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처방은 10인10색이다. 교수와 연수생간에 다르고, 연수생간에도 성적·나이 등에 따라 견해가 크게 엇갈린다.

가장 자주 제기되는 문제점은 연수원이 지나치게 법원 중심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올해 연수원을 마친 한 변호사는 “법원 엘리트주의가 심하다. 지도교수에 대한 절대복종은 불문율이다. 수업시간에 차렷 경례를 한다. 수업이 끝나면 꼭 박수치고…. 권위주의적이고 획일적인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현재 판·검사로 진출하는 연수생은 전체의 30% 정도. 나머지 70%는 다른 직역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수 연수생들의 주장이다.

연수원 교수 출신 주명수 변호사는 “변호사가 될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민사판결문 쓰는 것을 중점으로 가르친다. 차라리 변호사 과목을 늘려 실무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연수생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판사·검사·변호사 교육을 따로 시키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건국대 임지봉 교수는 “직역별로 희망자를 나누고 별도 교육을 하게 되면 경쟁도 완화되고 국가가 모든 법조인을 길러내는 현행 방식의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검사 임관을 가르는 성적 반영비율을 낮추자는 목소리도 높다. 이상원 교수는 “연수원 성적 반영비율을 50%로 줄이면 연수생들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500등까지 1차로 추려낸 뒤 대법원과 법무부가 이들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평가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1년차 자치회장 김다숙씨(45·여)는 최근 자살한 동기생을 추모하는 글에서 “우리 의식 속에 진정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뒤바뀌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은·강병한·임현주기자 dek@kyunghyang.com

[사법연수원 25時]사법연수원생 어떤 대우 받나


사법연수원생들은 5급 공무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연수원 1학년은 5급 공무원 1호봉에 해당하는 월 1백40만4천8백원을 받는다. 2학년은 5급 공무원 2호봉인 월 1백46만7천9백원이다.

실제로 연수원생들 손에 쥐는 돈은 월 90만원 정도다. 세금을 내야 하고 동기회, 향우회, 대학 모임·각종 동아리 회비로 빠져나가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연수생들은 보통 1인당 4~5개의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일부 여성 연수생들은 월급 90만원을 잘 쪼개서 적금을 드는 등 알뜰하게 돈을 모은다. 그러나 대다수 남성 연수원생들은 ‘적자’ 신세다. 이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는다. 연수원 1년차 김모씨(27)는 “씀씀이가 사회인들처럼 커져 연수원 졸업때는 2천만~3천만원의 빚을 진 선배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수원을 마치고 판·검사에 임용되면 3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행정고시 합격자가 5급으로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출발부터 크게 앞서 나가는 셈이다.

연수원 졸업 후 진로는 예전보다 다양화되는 추세다. 요즘에는 판·검사 못지 않게 대형 로펌도 인기다. 20대 젊은 연수생들은 대형 로펌을 선호한다. 1학년 말이 되면 성적이 좋거나 영어·제2외국어가 특출난 연수원생들에게 대형 로펌이 먼저 접근해온다. 임관 성적 안에 든 연수생들은 대부분 대형 로펌의 전화를 받는다. 한해 평균 100여명의 원생이 이른바 10대 로펌에 스카우트된다.

지난 2월 연수원을 수료한 35기 895명 중 비법조 직역에 진출한 원생은 138명이다. 국가기관에 68명, 일반기업에 47명이 취업했다. 민주노총에 3명, 전국금속노련에도 2명이 진출했다. 국선전담변호사를 선택한 연수생도 5명이다.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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