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3029&article_id=64670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면 안되는 그 영화는 몰입이 잘 안되나 보다. 어느 신문에 이런 칼럼이 실렸다. “영화 관람을 무사히 마치려면 어린아이의 마음과 눈높이로 돌아가야겠다고 재빨리 다짐했다. (…)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예수의 말씀도 생각났다. 나는 슬쩍 그 말씀을 바꾸어 나 자신에게 암시를 걸었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리라.’ 나는 여기저기서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때에 맞춰 함께 웃어주었다.” 불신을 유예하기 위해 예수의 권능까지 필요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불신의 유예’는 정작 영화 밖에 있다. <충무로라는 이름의 존재하지 않는 적지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멸시를 당하며, 거대자본 CJ에 투자와 배급을 당하는 경제적 수모, 지원금 12억원+보증금 30억원의 국가적 냉대, 돌리는 채널마다 얼굴이 나오는 사회적 무시를 극복하고, 미국에서 찍고 미국 배우가 미국말로 연기하는 영화로 한국을 알리고, 미국 관객의 최악의 평으로 국위를 선양하며, 한국에서 올린 수익의 대부분을 할리우드에 뿌림으로써 조국에 달러를 벌어다준다.> 이 황당한 각본에 온 사회가 넋을 잃고 불신을 유예한다. 까닭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