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심의에 오른 나머지 네편은 어떤 이야기?

<Glory Day>

시놉시스 지공, 한규, 용걸, 승범, 상우는 고등학생 시절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학교를 졸업한 순간부턴 각자의 환경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건달 형을 둔 지공, 부유한 검사 아버지 밑에서 무기력하게 성장한 한규, 재능없는 대학 야구선수 승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생활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우는 용걸,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다 재수를 포기하고 군입대를 결심한 상우. 상우의 입대 직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다섯명은 사소한 실수로 유치장에 끌려간다. 유치장에서 보내는 하룻밤, 이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청춘드라마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부조리한 사회 안에서 청춘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풀어놓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청춘드라마가 애써 이야기하지 않았던 지점, 그곳을 조금 다르게 짚어보고 싶었다.”(최정열)

<바비>

시놉시스 미국의 내과의사 스티브는 어린 딸 바비를 데리고 부산에 도착한다. 그는 부산에 사는 소녀 순영을 입양하고자 한다. 술독에 빠진 무능한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 순자, 순삼, 대한과 살고 있는 순영은 갑작스런 입양 소식에 충격받는다. 순영의 작은아버지는 입양 브로커 역할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순자는 순영 대신 자신이 입양되길 고대하며 심술을 부린다.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순영의 순수한 마음에 매혹된 바비는 급속도로 그녀와 친해지지만, 이 광경을 보는 스티브의 마음은 착잡하다. 사실 그가 순영을 입양하려는 데에는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강간사건엔 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어려서부터 불행으로 누적되었다가 폭발한 것이다. 난 가족 이야기에 특히 관심이 많다. 행복한 가정에서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한 가족들 이야기에 늘 관심이 간다. 입양과 결합된 음지의 가족 이야기는 내가 맛보진 않았지만 가장 잘 요리할 수 있는 메뉴라고 생각한다.”(이상우)

<보내지 않은 편지>

시놉시스 다큐멘터리 감독 정상훈은 1950년대 활동했던 유학파 여성감독 김예분에 대한 정보를 우연히 접한다. 그 존재조차 몰랐던 여성감독의 충격적 데뷔작 <돌아보지 마라>는 유실되어 소문으로만 떠돌고 있다. 심지어 김예분은 두 번째 작품 <보내지 않은 편지>을 찍던 도중 돌연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자살로 판명되었지만 거기에 뭔가 감춰진 속내가 있었다. 흥미를 느낀 상훈은 김예분의 주변 인물들을 탐색하기 시작하고, 김예분의 죽음 뒤에 실체를 알 수 없는 권력의 외압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6년 전 김기영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준비했다가 접은 적이 있다. 지난해 즈음 그때 작업물을 다시 돌려보다가 이 내용을 좀 다른 방식으로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1950년대에 김기영 감독님 같은 기상천외한 감독이 여성이었다면, 그녀가 상당히 급진적인 사상을 갖고 있고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영화를 찍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해졌다. 형식적으로는 <맨 온 와이어>와 <디스트릭트 나인>을 보면서 미스터리 스릴러와 다큐멘터리 형식이 결합되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민간 사찰, 인터넷 검열 등의 현재 상황과 맞물리는 측면이 있으니 현재성으로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양정호)

<안녕, 상호씨!>

시놉시스 영화감독 지망생 지혜는 쉽지 않은 데뷔작 준비에 지쳐 자살을 생각한다. 다양한 자살 방법을 놓고 고민하던 중 엄마의 기일을 알리는 아빠의 전화를 받는다. 할 수 없이 고향에 내려간 지혜는 정수기 대리점을 운영하는 아빠 상호의 잔소리에 지겨워하다가, 어느 순간 젊은 시절의 상호와 마주친다. 지혜와 동갑인 젊은 상호는 지혜와 함께 길을 떠나고, 그녀가 느끼는 삶의 불안이 자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이 뜻하지 않은 여행을 거치며 지혜는 어느 순간 상호가 이성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기본적으로는 아빠와 딸 이야기다. 하지만 부녀관계에 대해서 깊이있게 파고들기보다는, 서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해줄 수 있는 응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빠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응원, 내가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응원. 가족 간의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 뭔가 해결을 손쉽게 그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관계라는 게 더 좋아지거나 다음 순간엔 훨씬 나빠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거니까. 구체적인 해결을 제시하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는 그런 느낌이 더 소중한 것 같다.”(경지숙)


당선작 <로맨스 조>의 이광국 감독 인터뷰

시놉시스 인기배우 우주현이 자살한 뒤, 그녀의 출연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로맨스 조는 영화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낙향한다. 자살을 생각하고 내려간 고향에서 그는 일본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년과 마주치고, 소년의 엄마가 자신의 첫사랑 초희였음을 알게 된다. 한편 새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시골에 온 유명인사 이 감독은 심심해서 부른 다방 레지로부터 로맨스 조의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의 여정과 결말에 대해 듣게 된다. 이 감독은 로맨스 조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욕심내지만, 이야기는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로맨스 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작업하는데 글이 막혀 괴로워하고 있던 도중 다른 손님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들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한테는 이야기가 필요하구나. 정보든 소문이든, 지적인 부분이든 끊임없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상황은 다를지언정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각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요구하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지만, 몇겹으로 이어지는 액자식 구성이 독특한 영화적 힘을 만들어낸다.
=M. C. 에셔의 <그리는 손> 같은 뉘앙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있지만 밖에서 보면 두손 자체도 그림이다. 그런 식의 이야기를 짜다보니 액자식 구성으로 가게 됐다.

-장르도 하나로 정의내리기 힘들다. 여러 가지 분위기가 섞여 있다.
=쓰기 시작할 때는 코미디였다. 몇개의 액자들이 겹치면서 멜로드라마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코미디로 보였으면 좋겠다.

-배우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일 것 같다.
=연기 지도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 전체를 명확하게 꿰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할 얘기들이 나올 것이다. 사실 디렉팅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다. 보통 제일 자주 나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편하게 하세요’ 식의 뜬구름 잡는 디렉팅이다. 지금의 결론은, 형용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직접적인 동사를 잘 사용하자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을 4편이나 함께한 입장에서 그로부터의 영향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감독님 연출부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내 작업을 할 때 ‘홍상수 아류 아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떡하나, 하고. 내가 홍 감독님 작품을 4편을 연달아 작업했을 때도 주변에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 현장에서 일하면서, 오히려 나한테 맞는 부분을 서서히 보게 됐고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영향일까.
=영화를 만들고 대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런 태도가 내게 정말 큰 힘이 된다. 다른 현장에선 시스템에 대한 갈증이 컸다. 수많은 파트와 수많은 인력이 모여 있을 때 되게 소모적인 부분들이 자꾸 눈에 보였다. 홍 감독님 영화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영화 하나만 놓고 달려갈 수 있다. 이를테면 배우 오디션 부분에서도, 난 오디션 진행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내가 연기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 저 경력 많은 배우들을 앞에 놓고 오디션을 보는 방식 자체에 죄책감이 들었달까. 그런데 홍 감독님이 배우들과 작업하는 방식을 보면서 저렇게 만나는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는 부분에서도 그렇다. 시나리오가 따로 없이 트리트먼트를 놓고 작업하시는데, 그게 대사만 정확하게 확정되지 않았다 뿐이지 신 구분부터 시작하여 나머지 상황 설명은 정확하게 다 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고 영화적으로 대사만 바꾸는 게 가능해진다. 나 역시 영화 작업할 때 트리트먼트부터 아주 구체적으로 잘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입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현재 한국영화계 상황을 어떻게 체감했나.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군데 영화사를 다녔다. 기준 자체가 돈에 맞춰져서, 시야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상업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야기는 재밌는데 돈이 안돼’라고 말이 나오는 순간 아무것도 진행이 안된다. 가장 답답한 건 투자사나 제작사가 그렇게 나오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들도 거기 맞춰서 자기의 생각이 없는 장르영화를 재생산하는 소모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그래도 난 운이 좋은 편이다. 홍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큰 예산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의지가 있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배웠다. 최악의 경우 100만원이든 200만원이든 내가 재밌게 찍을 수 있는 걸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 ‘씨네21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 2010’에서 지원하는 제작비 자체도 극히 적은 액수긴 한데.
=조건이 안 좋을수록 내가 더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창의적인 게 더 나올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선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다. 좋은 장비, 좋은 배우 다 쓰면 더 좋겠지만 그럼 내가 게을러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쓴다면, 그걸 알아봐주는 관객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는다.


 “<로맨스 조> 같은 경우, 신인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또 이광국 감독이 홍상수 감독님의 조감독으로서 네편(<극장전>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을 함께 작업하며 적은 예산으로 현장을 운용할 수 있는 탄력성을 배웠다. 작가로서 자기 색깔이 분명히 있으며, 관객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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