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프로젝트에 대해 아직까지 파라마운트가 관심을 갖고 있을 시절,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와 마이클 아이즈너가 마틴 스코시즈를 찾아와 나눴다는 대화의 한 토막. 지지부진한 상황에 낙담해 있는 스코시즈에게 두 사람은 몇개의 대본 중 하나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베벌리힐스 캅>, 이걸 해볼 생각은 없어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을 맡기로 한 영화인데….” 그러자 스코시즈가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고, 그들은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며 “왜 있잖아요. 촌 동네 경찰이 뉴욕에 와서 맹활약한다는 이야기 말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스코시즈의 (퉁명스러웠을) 대답. “그건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이잖아요.” 그러자 그들의 (당황스러워했을) 답변. “아니라니까요, <베벌리힐스 캅>이라니까요.” 그 대화의 깊은 속뜻이야 어찌 됐건,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는 그 말에 스코시즈는 적어도 68년까지 올라가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을 기억해내고야 만다.
스코시즈는 어떤 식으로건 자기 영화를 영화사의 명맥 안에 위치지으려고 한다. 이건 어떤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저건 어떤 영화의 부분을 참조한 것이며 등등 수많은 예를 든다. <분노의 주먹>의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를 설명할 때는 “(<워터 프론트>의 주인공) 테리 말론을 연기하는 말론 브랜도를 제이크 라모타가 연기하고, 다시 이를 드 니로가 연기한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일단 관객을 잡아채놓고 종종 무심히 사라져버리는 보이스 오버와 거기에 맞춰 사용되는 정지 화면(예컨대 <좋은 친구들>의 오프닝)은 트뤼포 영화 <쥴 앤 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때때로 화면 구성이 아니라 플롯 자체를 참조한 경우도 있다. <에비에이터>가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과 포개어져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등 위험이 예고되는 장면마다 그의 영화에 끈질기게 등장하는 붉은 색조의 화면들은 어린 시절 본 마이클 파웰의 영화 색감에 영향을 받아 평생을 갖고 가는 것 중 하나다. 스코시즈가 차용한 것 중에서 인물에 관련되어 가장 유명한 것은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가 사실은 존 포드가 만든 웨스턴 <수색자>의 주인공 이산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택시 드라이버>의 방황하는 고독자 트래비스는 조카를 찾아 황야를 헤매는 이산의 그 허망한 표정에 기대어 생각하게 된다.
마틴 스코시즈의 <에비에이터> |
(글) 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