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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5. 새로운 좌표 - 직업 의식

 

그러나 좀 쉬어야 했다. 책을 잡기만 하면 예의 증세가 나를 괴롭혔다.
고시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고시를 해야 할 필연적 이유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고,

법을 공부하면서 차츰 정의의 이념을 배워 가는 동안 '고시=권력=출세\'라는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등식이 우스운 것임을 느끼게 될 무렵
형님의 뜻 아닌 타계는 예시 과목의 철학 개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오던 삶의 의미를 보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맹목적 출세주의와 '그 수단으로서의 고시'라는 과거의 생각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상고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진로를 찾기는 어렵고 하여
고시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배수의 진은 거두어 버리고,
하나의 직업인이 자기의 생각에 충실히 종사하듯이 고시 공부도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려 했다.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 대신에
 '천직=소명'이라 써 붙이고, 숙소를 마옥당에서 집으로 철수하여

직장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낮에는 마옥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여유가 있을 때만 공부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울면 달래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 채우고 밤이 늦도록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잠을 덜 자면 이튿날 낮잠을 잤다.
그러나 가슴과 목의 증세는 쉽게 낫질 않아 16회 시험까지는 부담 없이 쉬었다.

 

16회 시험도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응시한 정도였고 성적은 15회보다 내려
130위 안팎으로 생각 되었다.

 

17회 준비 1년간은 정말 순조로웠다. 절에 있을 때 만들었던
독서대의 실용 신안 특허 출원 관계로 9-10월에 조금 쉰 것 말고는
가금 아내와의 대판으로 선풍기 목이 부러지거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활극이 연출되기도 하는 가운데에도 예전과 같이 재미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10월 하순부터는 풀었던 긴장을 바짝 조여 이때부터는 아내가 들 건너
마옥당까지 점심을 날라다 주었고 잠은 여전히 집에서 잤으나
신걸이가 잠들기 전에는 우리 방에 못 오게 하고 책을 보았다.

 

그러나 17회 때에도 역시 정리가 다 되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어느 때보다 정리 기간이 착실했으니 훨씬 낫겠지…….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신문 기자들이 수석 합격자 인터뷰하러
올 테니 당신도 피력할 소감 한 마디 준비해 두지 그래."하고 허풍을 쳤다.

 

건강은 좋았고 시험은 순조로웠다. 집에 와서도 역시 출발 전의 호언장담을 되풀이했다.
3월 27일 아침 먹고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진작부터 낮잠에 들어갔다.

꿈결에 "무현아! 무현아!"하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그도 뒷말을 잇지 못했고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아내는 내 무릎에 엎드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형님! 지하에서도 신문을 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형님 생각에 자꾸만 우십니다."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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