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759
-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만 해도 굉장히 다양해요.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 매우 '송강호스러운' 역할이죠.전작의 이미지를 비우고 새로운 걸 채우는 게 아니라, 모든 전작을 쌓은 총합에 새로운 걸 또 더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를 들면[의형제]의 이한규 안에는 [쉬리]의 이장길,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우아한 세계]의강인구, [밀양]의 김종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윤태구가 다 있다는 거죠.
음.그건 이렇게 설명해야겠네요. (탁자 위의 페트병을 집어 들며) 내가 이 병을 그려야 해요. 만약 묘사를 한다면, 이 페트병그대로 그리는 거잖아요. 그러면 똑같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죠. 전 연기는 '묘사'가 아니라 '모사'가 돼야 한다고생각해요. 내가 그린 페트병, '송강호만의 페트병'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럼 '모사'는 뭐냐! 페트병의 본질이 무엇인지찾아내서, 그걸 표현하는 거예요. 실물이랑 똑같이 그리면 "잘 했네. 똑같아, 오케이" 그러고 끝이에요. 그 이상의 감동은없죠. 그런데 페트병의 본질을 찾아내서 송강호의 색을 입혀서 그려내면 "진짜 페트병보다 더 진짜 같은 페트병!"이라는 느낌을끌어내는 거죠. 그게 연기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 오늘 나 멋진 말 너무 많이 한다!(좌중 폭소)
이한규는 송지원과 달리 굉장히 현실적인인물이에요. 아무리 국정원 요원이지만 투철한 국가관이나 분단에 대한 이념과 신념을 내세우지 않아요. 그저 직업이 국정원요원이고,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자기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는 인물이죠. 그러니까 국정원에서 쫓겨나서도 열심히 잘살잖아요. 6년 전 간첩 사건의 주범 송지원을 다시 만났을 때도, 이념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요. '돈'으로 보이는 거지! 간첩포상금 1억! 간첩단은 5억! 나 로또 맞았구나!(웃음) 그만큼 현실적인 사람인 거죠. 그래서 한규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남성, 아버지, 직장인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한규가 영화에서 그러거든요. "남의 돈 가져다가 내 행복 찾는 건죄가 아니야."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평범한 사람이에요. 반면에 동원이가 연기한 송지원은 신념과이념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자죠.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지향하는 인생의 최고점은 바로 가족이고, 사람이에요. 인간적으로 사는 거!분단도, 체제도, 신념도 아닌 거죠. 신념이라는 게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거니까. 결국은 '사람'인 거고.[의형제]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 [의형제]는 송강호, 강동원의 연기만큼이나 장훈 감독에 대한 기대도 높은 것 같아요. 작업은 어떠셨어요?
처음엔 그냥 연기를 시켜놓고 아무 말 안하고 보기만 하더라고요. 좀 이상했지. 알고 보니 나를 대선배로 생각해서 어렵기도 했고,연기 디렉팅을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고 하더라고요. 이틀째 촬영이 끝나고 장훈 감독이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머릿속의 한규는 1이라면 내가 연기한 한규는 3이라고. 감독이 갖고 있는 그림이 딱 느껴졌어요. 장훈 감독이 굉장히 장르적인감각이 있어요. 연기도 장르적으로 해주길 원했는데, 나는 조금 더 새로운 걸 하고 싶었죠. 나는 배우니까, 감독의 의견을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열심히 들었죠. 그리고 찍으면서 맞춰가자고 했는데, 절반쯤 찍고 현장 편집을 보면서 감독이 "송강호선배 톤이 딱 맞다"고 해주더군요. 그게 뭐냐 하면, 어떤 장면과 연기에 이미 정답을 정해놓는 것과 정답을 만들어가는 것의차이거든요. 촬영하면서 나도 장훈 감독의 예리함에 놀라고, 감독도 내게 새로운 걸 배우면서 서로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 장훈 감독의 장르적 연출과 송강호의 장르를 깨는 연기가 만나면서 어떤 시너지가 생겼을지 궁금하네요.
저도 [의형제]는 장르적이고 대중적인 상업영화라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형식은 그렇더라도, 거기서 움직이는 배우의 연기는관습적이거나 장르적인 느낌이 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장훈 감독이 처음에 당황했던 거지. '말로만 듣던 송강호의 연기가…글쎄…'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요? 왜냐고? 말로만 들었으니까. 와하하하.(좌중 폭소)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보고 부딪치는 건 많이 다르잖아요. 내가 맞는 건지, 감독이 맞는 건지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게 서로에게 자극이 된 거죠.장훈 감독에게 놀란 점은 리듬감이에요. 장르영화일수록 리듬감이 중요한데, 그걸 굉장히 잘 살리면서 연출하더라고요. 대단한능력이고 내공이에요.
오, 그건 아주 기분 좋은 칭찬이네요. "송강호, 너 연기 잘한다"는 말보다 [밀양](2007)의 전도연이, [박쥐]의 김옥빈이, [의형제]의 강동원이 참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좋더라고요. 같이 하는 배우를 죽이는 연기가 아니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연기를,제가 한 거니까요. 함께 한 배우가 빛이 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칭찬이 없죠. 내가 뭐 특별히 노력을 한 건 아니에요."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런 말 절대 안 하죠. 그런데 어떤 지점을 꼭 짚어서 가르친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느낌을 받는거예요. 저 배우의 느낌과 공기. 배우가 이 작품의 공기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느끼는 게 곧 배우는 거죠.
- [의형제]의 엔딩은 "여러분 너무 심각해하지 마세요. 이 영화는 대중적인 상업영화랍니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에서 가장 특이한 엔딩이 아닌가요?
이질문의 의도는 내가 정확하게 알죠.(웃음) 감독과 함께 고민했던 지점이 클라이맥스부터 엔딩까지의 연결이었어요. 처음 시나리오는이 부분이 너무 관습적이고, 장르적이고, 감상적이었죠. 분명히 새로운 시도가 많은 작품인데 맺음이 너무 대중 영화의 공식을따르는 게 아닌가, 고민했어요. 자칫 영화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촬영하면서 생각해보자고 했죠. 그래서 클라이맥스는여러 번 찍었어요. 아주 냉정하고 차갑게도 연기하고, 감정을 북돋워서도 연기하고. 그 중에서 전체적인 톤이 맞고 가장 좋은 걸골랐죠. 엔딩도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친 끝에 대중 영화의 미덕을 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냈어요.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서면서 행복한느낌을 갖게 하는 것.
물론 더 현실적이고 비극적인 엔딩이 욕심 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중적인 미덕을 통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은 관객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종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지점이라면, 아쉽지만 수용하자는 결론이죠. [의형제]기자 시사 때 영화를 보는 데, 내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감상적인 음악이 쫘악~ 깔리는 거예요. 약간 간질간질하더라고!(웃음)하지만 영화가 목표하는 지향점을 가기 위해선 내 취향과 조금 다른 걸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