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제너레이션>의 장점 중 하나는 공간 혹은 장소의 물질성에 대한 감각이다. 예컨대 여주인공 재경이 사채를얻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 세운상가의 어지러운 미로들은 어떤 상징이거나 환유이기 이전에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감지된다.이 영화의 공간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능적 요소의 하나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동시대적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참여한다.지금은 헐린 2000년대 초의 구세운상가가 없었다면 <마이 제너레이션>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병석의 월셋방에사채업자의 하수인이 수돗물을 채우는 장면의 절박함은 반지하방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성격과 그것의 사회경제적 위상에 대한 우리의인지가 교차 작용한 효과다. 요컨대 <마이 제너레이션>의 공간들은 역사적 지정학적 장소로서의 면모가 더해져 두터운입체감을 가진다.


반면 가난한 젊은 시인 선우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여러 소동 끝에 재회하는 <곤경>의 공간들은 대부분 이야기의부속물이다. 다시 말해 기능은 있지만 표정이 없거나 빈약하다. 기능도 평면적이다. 최소한의 무대장치만 있는 연극으로 옮긴다해도, 혹은 1950년대나 1960년대로 시간적 배경을 옮겨도 이 이야기는 거의 성립할 것이다(그렇다면 <곤경>이좀더 보편적인 영화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있는 보편성을 획득했는지는 따져볼 문제이며 이것은 다시말하겠다). 공간을 <마이 제너레이션>에서와 같이 다뤄야만 좋은 영화가 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마더>처럼 실제로는 완전히 동떨어진 장소들을 하나의 연속적 공간으로 포장하는 영화도 있으며,<도그빌>처럼 공간을 아예 추상화된 연극 무대처럼 꾸며 영화의 공간 감각을 성찰하는 영화도 있다. 다만 똑같이 빈곤한제작 규모에도 <마이 제너레이션>의 공간이 영화적으로 훨씬 풍부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또 다른 차이는 시선의 문제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청년 병석과 애인 재경의 시선이 교차하고, <곤경>은대체로 선우의 시선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전자가 두 사람의 이야기이고 후자가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사실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영화에서 시점 이동은 화자의 이동만이 아니라 관객 편에서 볼 때 육체적 응시의 교체를 포함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보다 훨씬 까다로운기술적 문제가 된다. 시선이 교체될 때 발생하는 육체적 분열 혹은 비대칭과 불균형의 감각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통합해야 하기때문이다. 많은 대중영화가 복수의 화자를 거느리지만 대사건을 정점에 놓고 정보 중심의 신들을 배열함으로써 이 분열의 느낌을감소시킨다. 하지만 두 영화처럼 일상적 사건이 나열되는 영화라면 응시 자체가 일종의 사건이 되면서 그 배열과 조합이 훨씬어려워진다.


김영진은 “수습되지 않는 삶을 열심히 수습하려고 하는 강박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도 작은 해방”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수습되지 않는 삶’을 응시하는 순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영화다움에의 추구에 관한 한 나는 이 감독에게,야심을 가지기를 요청하고 있는 게 맞다. 하지만 존중받는 영화학교를 막 졸업하고 주류 영화계 밖에서 자신의 첫 작품을 찍은 젊은감독에게 그 아닌 무엇을 요청할 것인가.

Posted by 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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